한국인 의 화장실 문화(뒷깐 문화)
인류의 화장실 문화는 인류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
주욱~ 여태껏 이어져 왔으며 세상이 변해오며 많은 화장실 문화의 발전을 거쳐 왔습니다.
의식주 만큼이나 우리의 생활에 제일 가까웠으나
외면 되어져 온 문화가 또한 화장실문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는데
마침 일산 호수공원 내에 자리잡은 화장실 전시관에 다녀오며 탐방기를 쓰게 됐네요.
호수공원에는...
인라인, 노래하는 분수대, 인공폭포, 공연, 노인복지회관, 꽃박람회등
이 모든 즐거움을 나누는것 외에도 몇가지 전시장이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이 화장실전시관입니다.
호수공원의 가장자리 둘레의 산책로와 자전거이용도로를 주욱 따라
호수공원의 반바퀴 정도를 가서 반대편즈음에 다다랐을때 화장실전시관을 볼수 있습니다.
1층엔 깨끗하고 밖이 훤히 보이는 화장실이 있고
그 옆 지하로 내려가면 전시관이 자리하구요.
개장시간은...
하절기엔 오전 9시 ~ 오후 6시.
동절기엔 오전 9시 ~ 오후 5시.
입구를 통해 들어가 내부의 사진들입니다.
한국의 화장실 문화
한국전통측간의 유형
한국전통 측간의 유형은 자연배경에 따라 다양한데,
모두 자연과 불과분의 관계입니다.
수거식뒷간, 해우소, 잿간, 통시(똥돼지뒷간)으로 나뉘는데
다음 사진은 수거식뒷간의 모습입니다.
수거식뒷간은...
전통적 뒷간의 일반적인 형태로 항아리를 묻고 그 안에 분뇨가 차면 퍼내는 형식입니다.
항아리안에 똥과 오줌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쌓이면 악취가 나고 구더기가 많이 생기며
거름으로써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뒷간 입구에 오줌통을 따로 두어 똥과 오줌을 분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꺼낸 인분은 바로 쓰지 않고 밭 근처에 구덩이를 파 옮겨놓고 어느정도 지난 다음에 밭에 뿌렸답니다.
똥장군과 오줌장군.
다음은 분뇨통.
분뇨통은....수거식화장실에 모인 분뇨를 담아 나르는 통입니다.
뒷간의 민속으로...
뒷간귀신인 칙신이 있다고 믿어 왔는데,
뒷간은 언제나 사랑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는데,
특히 양반가에서는 안 뒤간을 부엌옆 마당의 디딤방아간 옆에
세워 두곤했고 심지어 사랑채 뒷간은 대문밖에 두기도 하였답니다.
그래서 밤늦게 드나들 때에는 공포를 자아내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공포심이 뒷간귀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고 합니다.
이 뒷간 귀신 신앙은 변소각시(전남, 경북), 칙간조신(전남), 정남각시(전남, 경북),
변소장군(경북), 칙시부인과 칙도부인(제주도)등 전국에 광범위하게 나타났습니다.
강원도에서는 뒷간을 지은 뒤 반드시 길일에 제물과 부적을 갖추고 탈이 없도록 해달라는
고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그렇기때문에 시월상달고사에는 뒷간에 떡을 올렸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뒷간에 신을 빠뜨리거나 사람이 빠졌을때에도 떡을 해 놓고 액땜의 방지를 빌었답니다.
뒷간귀신은 긴머리카락을 발에 걸고 세는 버릇이 있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면 놀라서
머리카락을 뒤집어 씌우게 되는데 귀신을 만난 사람들은 이따부터 앓다가 죽는다고 믿어오기도 했답니다.
뒷간에 갈때 세걸음내지 다섯걸음 정도 앞에서 두서너번 기침소리를 내면 귀신이 피한다고 하며,
제주도의 칙시부인은 원래 문신이었던 남 선비의 첩으로 본처를 죽였다가 그 아들에게
복수를 당해 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집안의 구신들은 대개 무병장수와 복을 가져다주는 착한귀신인데 반해
뒷간귀신만은 성품이 별나서 잘 받들지 않으면 화를 입히는 못된 귀신으로 여겨졌답니다.
전통측간의 한 유형으로 해우소는...
'근심을 더는 곳' 으로서 절의 뒷간을 말합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절은 비탈과 둔덕을 개간하여 텃밭을 일구고 거름을 주어야 채소를 일굴수 있었습니다.
해우소는 배셜의 욕구를 해소함과 동시에 농사에 쓰일 거름까지 해결해주는 곳으로 원리는 잿간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해우소는 대부분 비탈진곳에 놓여 앞엔 1층, 뒤엔 2층의 누각형식이 많습니다.
해우소가 비탈위에 놓여 있어서 볼일을 보면 아래의 인분을 꺼내는 부분이 채소밭과 근처에 자리해
거름으로 쉽게 꺼내쓸수 있습니다. 또한 비탈에 지어져 바람이 잘 통하고 볕이 잘들어 냄새가 잘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유형으로 잿간은...
잿간이란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여기에서 나오는 재를 쌓아놓는 곳이랍니다.
재는 거름으로 많이 쓰였는데 알칼리성분이 많아 산성화된 토양을 회복시키고 작물의 병충해를 막아줍니다.
또한,
똥에 재를 섞으면 냄새가 나지 않을뿐만 아니라 좋은 거름이 됩니다.
뒷간을 겸한 잿간은 구조가 간단한데 잿간 한쪽에 '부충돌'이라는 디딤돌 두개를 놓고 앞에 재를 쌓아놓고
뒤에는 똥과 재가 섞인채 쌓아 놓습니다. 볼일을 보고 재를 뿌린 후 삽으로 떠서 한쪽에 쌓으면
쌓인 똥재는 나중에 천연비료가 되는 간단하고 실용적인 뒷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통시'(똥돼지뒷간)입니다.
통시는 똥돼지뒷간으로 2층구조로 위에서 떨어진 똥을 아래층의 돼지가 먹을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도 제주도와 지리산의 깊은 산골에 남아 있습니다.
뒷간을 2층으로 올리고 아래에 돼지를 키우게 된 이유는 돼지의 먹이를 줄일수 있고
볼일을 볼 동안에 뱀이나 독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두꺼운 지방층으로 독사의 공격에 견딜수 있을뿐 아니라 독사가 좋은 먹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랍니다.
돼지뒷간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은 약 2000여년전으로 중국낙양에서 돼지뒷간의 토기모양 발견이랍니다.
돼지는 사람의 똥을 잘 먹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때문에 별도의 먹이를 더 주고, 뒷간에서 자란 똥돼지는
그 맛이 아주 좋다고 하는데 이미 다들 알고 계시는 것이지요? *^_^*
한국의 뒷간유물 세가지
다음은 한국의 뒷간유물로 세가지를 소개하려는데요
매화틀, 불국사의 수세식변기, 똥장군입니다.
다음은 불국사의 수세식변기 사진입니다.
사각형 돌의 중간을 배 모양으로 길게 파 내고 앞쪽 뾰족한 부분에서 바깥으로 구멍을 냈는데
용변 후 물을 부으면 구멍으로 물과 함께 오물이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으며
이 변기를 두는 뒷간이 따로 있었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다음은 똥장군과 오줌장군의 사진입니다.
똥장군은 분뇨를 퍼 나르는데 쓰이는 농기구로 지방에 따라
추아리, 추맹이, 장군이, 장군, 소매장군이라고도 합니다.
재질로는 옹기와 나무로 만든 것 두종류가 있습니다.
옹기는 양쪽이 모두 볼록한 것과 한쪽은 평평하고 반대쪽은 볼록한것이 있습니다.
둘다 목이 짧고 좁은 주둥이가 달렸으며 손잡이가 있기도 하고 없는것도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것은 나무를 여러장 대어서 둥글게 맞추고 양 옆에 마구리를 댑니다.
띠를 둘러서 모양을 유지하고 주둥이는 가운데에 붙혔습니다.
주둥이의 목은 일반적으로 짧으나 목이 길면 쏟기가 매우 편리하며 오줌장군의 마개는
짚등으로 막아서 대신하기도 하고, 마개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쓰지 않을때는 물을 담아서 나무의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매화틀과 매화그릇입니다.
매화틀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쓰던 변기로써 '매우'는 임금의 대변을 높여 부르는 말이며,
여러가지 옷을 겹쳐 입었던 왕족이 대소변을 볼때 매번 뒷간에 갈 불편을 겪지 않게 하기위한 휴대용변기입니다.
전체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윗면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어 걸터 앉아 용변을 볼수있게 되어집니다.
아래에는 분뇨를 받는 청동제 매화그릇이 있는데 매화그릇은 매화틀에 넣고 빼낼수 있습니다.
한국의 요강문화
요강은 집 밖의 뒷간에 자주 다니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작은 뒷간'
혼례를 치르는 여성들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전통적인 혼수품이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강은 부여 군수리에서 출토된 백제의 요강 두개입니다.
앞의 것이 여성용, 뒤의 것이 남성용으로
남자용은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호자라고 하며 중국의 것과 비슷합니다.
여성용은 넓고 낮아 걸터앉기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임금도 요강을 사용했으며 요강에 담긴 오줌의 색깔을 보고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합니다.
이 처럼 요강은 모든 계층이 사용했으며 사회계층에 따라 그 만드는 재료가 달랐습니다.
청자와 백자로 만든 고급 요강도 있고, 못으로 만든것도 있었습니다.
서민들은 옹기로 만들어진 요강을 주로 사용했으며 나무속을 파내서 옻칠을 한것도 썼답니다.
오줌싸개와 똥개(워리 워리)
아이들이 자라 똥과 오줌을 가리는것에 익숙해진 다음에도 야뇨증이라해서 밤에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전에는 이를 고치는 방법으로
아침에 오줌을 싼 아이에게 키를 머리에 씌우고 바가지를 손에 들고 이웃집에 가서
'저, 소금주세요'라고 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이웃집에서 어른이 나와
부지깽이나 빗자루등으로 키를 때리며 '너 오줌 쌌구나, 또 쌀래?" 하며
혼을 내며 창피를 줬습니다. 이는 오줌 싼 아이에게 '부끄러움'이란 자극을 주어
스스로 오줌싸는 버릇을 고치게 했던 우리민족의 슬기를 엿볼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재래종 개에는 '똥개;라 불리는 것이 잇는데,
요즘에는 아기에게 기저귀를 채워주지만 예전에는 똥과 오줌을 스스로 가릴때까지
아랫도리를 입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합니다. 마당에서 아이가 똥을 누면 개가 돌아다니다가 와서
아이의 똥을 먹었으며, 방안에서 똥을 쌌을때에는 오른이 "워리 워리"하고 마당의 개를 부릅니다.
그러면 개는 재빨리 방안으로 들어와 방바닥의 똥을 먹고 아이의 엉덩이까지 깨끗하게 핥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똥개'라고 불렀다는 군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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