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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승려는 왜 머리를 깎지 않을까

朴正培(박정배) 2011. 11.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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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오전 개성 영통사에서는 '영통사 복원 3주년 기념법회'가 열렸다.
ⓒ2007 오마이뉴스 구영식


지난 8일 오전, 조용하던 산사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개성 영통사의 복원 3주년을 기념하는 법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남측과 북측 불자를 비롯해 7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법회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승려들도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삭발을 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남측 참석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에게 "왜 북측 스님들은 머리를 깎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럴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천태종을 창시한 대각국사 의천이 승려는 꼭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것이다."

개방을 '조절'하고 있는 북측이 은근히 개방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영통사는 천태종의 성지... '성지순례'는 계속 될까

개성 송악산 자락에 위치한 영통사는 고려 현종 18년인 1027년에 창건되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 곳에서 천태종을 개창했고, 이 곳에서 열반에 들었다. 영통사는 천태종의 성지인 셈이다.

영통사는 불교를 장려했던 고려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이곳에 들러 향을 피워 올렸고, 이렇게 인연을 맺은 왕들의 얼굴그림(진영, 眞影)은 진영각에 모셔졌다. 하지만 영통사는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됐다.

다행히 지난 98년부터 북한과 일본 학자들이 3년여에 걸쳐 발굴작업을 벌였고, 이후 북한 역사학계에서 영통사 복원을 위한 설계도를 완성했다. 이어 지난 2002년 11월부터 남측의 천태종과 북측의 조선경제협력위원회가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2005년 10월 복원을 완료했다.

6만여㎡ 규모의 부지에 29채의 전각이 복원됐고, 절 앞에는 북한의 국보(제36호)인 '영통사 대각국사비'가 세워졌다. 영통사가 화재로 소실된 지 500여년 만의 일이다.

이날 열린 '영통사 복원 3주년 기념법회'는 상당히 의미있는 행사였다. 북측이 사실상 '개성관광 불가'를 통보한 가운데 열린 행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게다가 수익성을 좇는 관광사업이 아니라 종교적 차원의 순수한 남북교류사업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욱 값졌다.

주최측은 "단순 관광이 아닌 최초의 대규모 순수 남북문화교류사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특히 "새로운 대북사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난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즉 앞으로도 계속 '성지순례'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딸림기사 참조). 이와 관련, 리창덕 민화협 협력부장은 성지순례를 계속 허용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성지순례는 관광사업이 아니라 남축 불교도들의 신앙생활이다. 남측에서 이것을 관광사업과 결부시켜 복잡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천태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는 오는 18일(500명)과 23일(1000명)에도 영통사에서 기념법회를 열고 선죽교 등 개성시내 고려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이다.

▲ 개성시 자남동 근처에 위치한 한옥촌. 서울의 북촌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2007 오마이뉴스 구영식
▲ 한옥촌인 '민속려관'에서 나온 점심.
ⓒ2007 오마이뉴스 구영식
개성의 '민속려관'에서 점심을 먹다

기념법회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영통사 주변을 구경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영통사 대각국사비'였다.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인 대각국사비에는 의천이 어려서 출가해 송나라에서 천태종과 화엄종을 배우고 돌아와 영통사에서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천태종의 성지 영통사를 뒤로 하고 참석자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개성 시내로 들어왔다. 이번 행사는 금강산관광과는 확실히 달랐다. 개성시의 주민들과 거리풍경을 제법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남측 인사들이 자주 가는 개성공단은 사실상 남한"이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은 '민속려관'. 개성시 자남동 근처에 위치한 민속려관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특별한 손님이 왔을 경우 접대하는 장소로 쓰이는 것 같았다. 주최측의 한 관계자는 "북측이 우리를 최고로 대접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한옥이 즐비한 서울의 북촌과 닮았다. 특히 양쪽의 한옥촌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냇가는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가는 모래 위를 흐르는 냇물은 아주 맑았다. 누군가 이 맑은 냇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개성이 개발되는 순간 자본에 완전 함락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맑은 냇물에도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문득 개성관광사업이 북측에 무엇을 가져다 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남측의 개발시기를 반추해보면, 썩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고 북측의 '실존'을 무조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잡념은 밥상 앞에 앉는 순간 절로 사그라들었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맛본 개성음식은 정말 담백했다. 그런데 한 참석자가 이 담백한 맛을 놓고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원래 개성음식이 좀 담백하기는 하지만 재료가 많지 않아서 음식이 담백할 수밖에 없다. 담백하다는 것도 남측만의 표현일 뿐이다. 북측에서 보면 (재료를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에) 소홀한 대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고려 왕조 몰락의 상징적 장소인 선죽교. 포은 정몽주의 핏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오른쪽).
ⓒ2007 오마이뉴스 구영식


▲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일부. 현재 이곳은 고려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구영식


고즈넉하고 낡은 도시... 그래도 아이들은 공화국의 미래?

점심식사가 끝난 뒤 선죽교·성균관(현재는 고려역사박물관) 등 개성시내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고려 왕조 몰락의 상징적 장소인 선죽교에는 아직도 포은 정몽주가 흘린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자국인지 후대에 인위적으로 새겨진 자국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개성시는 고즈넉한 도시였다. 복잡한 남측의 도시와는 너무나 달랐다. 과일남새상점에서도, 리발관에서도, 세탁소에서도, 아동백화점에서도, 단고기식당에서도 좀처럼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3대 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을 내건 공장에서 '공화국의 노동자들'이 신기한 듯 우리의 버스를 쳐다볼 뿐이었다.

개성시는 낡은 도시였다. 현대적 개념의 도시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낡은 건물, 보도블럭 하나 깔리지 않은 인도, 신호등도 없는 사거리, 남루한 옷차림의 시민들…. 마치 남측의 1960~1970년대 지방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는 "거리에서 똥을 누는 아이도 보았다"며 "도대체 북한 정부는 그동안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참석자는 "핵을 개발하지 않지 않았냐"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공화국의 미래일까? 그들의 표정은 참 밝았다. 우리가 버스에서 손을 흔들면 그들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축구 연습이 한창이었다. 특히 여자 학생들이 제법 능숙한 솜씨로 리프팅(공을 땅에 떨어트리지 않고 계속해서 들어올리는 축구의 기본기술)을 하는 모습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거리 곳곳에서는 '김일성 수령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는 문구의 선전물이 자주 발견됐다. 특히 거대한 김일성 주석 동상은 우리뿐만 아니라 개성시까지 압도했다. 김 주석의 동상은 개성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마치 '사상'(유훈)이 '실존'을 지배하는 북측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개성시내 관광을 마치고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는 한 기자는 동료기자들이 개성방문 소감을 묻자 "일장춘몽 같다"고 답했다. 사실 그만큼 서울과 개성은 가까웠다.

방문단 버스가 북측 출입사무소를 나서자 마자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자연현상에 속하는 일이지만, 참으로 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 개성 시내에 세워진 선전물. '경애하는 어버이 김일성 수령은 인민의 심장 속에서 영원하다'고 적혀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구영식
▲ 멀리서 찍은 개성 시내의 풍경. 개성시는 고즈넉하고 낡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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