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조선전쟁박물관 소장 사진들
1953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날입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조인 55년을 맞아 북경 조선전쟁박물관이 소장하고있는 사진들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1950년 11월 27일 - 12월 1일 사흘간 장진호탈출작전이 전개되었읍니다.
온세상이 눈으로 덮혀있었고 그리고 계속해서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읍니다.
칼날같은 바람과 강추위속에 장진호 동쪽 비탈길 4십리를 전투와 후퇴를 밤낮없이 계속하면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는데 미병력 3000명중에 1000명이 전사했읍니다.
그때 빼앗긴 미제31보병연대 깃발이 북경 조선전쟁박불관에 걸려있읍니다.
1950년 10월 14일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는 장면
1950년 10월 25일 - 11월 5일 전개된 일차 공세
중공군은 제38군, 39군 그리고 40군이 일차공세를 해 왔는데 각군은 3만명의 병력으로 되어 있읍니다.
거의 보병으로 짜여저 있으며 경험이 풍부한 군으로 총기 다루는 기술과 군순찰등 베테랑급입니다.
1950년 10월 말 중공군 42군 제124사단 사령관 린치앙이 혜산진에서
1950년 11월 2일 일차공세때 후퇴하고 있는 미군병력을 앞질러가서 미군 장교를 생포하는 장면.
미 제2대대 B중대 장교.
일차 공세에서 8기병연대소속 미군 생포장면.
중공군은 9mm Sten Mark2 기관총과 일제 6.5mm 38구경 장총을 들고있읍니다.
1950년 11월 25일 계천(Gyechon)에서 적을 기다리는 중공군 39군.
1950년 10월 25일 운산(Unsan)에서 한국군 6사단을 공격하는 중공군 40군.
중공군 1차 공세, 1950년 10월과 11월사이에 용산봉에 있던 한국군 1사단을 공격하는 장면.
고장(Kojang)에 있던 한국군6사단 7연대와 운산(Unsan)에 있던 15연대는 거의 전멸 되다싶이 했읍니다.
장비와 무기도 다 빼앗겼읍니다.
2차 공세에서 중공군 제4군이 청천강전투에서 소민봉을 공격하고있는 모습.
1950년 11월 중공군 제39군이 UN군 추럭 수십대를 파괴하고 공격하는 장면.
장진호에서 미32연대 1대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준비하고있는 모습
장진호에서 중공군 80사단이 미군 32연대 1대대를 공격하고있는 장면.
중공군 80사단이 괴멸된 미1대대로 진격해 들어옵니다.
앞에 미군시체가 있읍니다.
장진호에서 미제57야전포대대와 D중대 그리고 15대대가 버리고 간 장비들.
1950년 12월 6일 제2차공세에서 평양에 입성하는중공군.
중국 사진설명에 의하면 미제24흑인보병연대에서 생포된 포로라고합니다.
1951년 1월 4일 독립문을 통과하는 중공군.
1951년 1월 8일 한강을 넘는 중공군, 3차 공세
1951년 2월 12일 횡성에서 한국군 8사단을 공격하는 중공군.
중공군3개사단과 북한군2개사단이 횡성지역에 있던 한국군 8사단과 3사단을 포위했읍니다.
포위망을 뚫고 원주로 후퇴하는데 병력손실이 극심했읍니다.
2월 11일-13일 사이에 사상자는
한국군 3사단 ---------- 1,238 장비손실 105mm 곡사포 ---- 28
5사단 --- 1,141 155mm 곡사포 ---- 6
8사단 --- 7,465 탱크 ------- 6
미군 2사단 --- 1,769 개인화기 ---- 1,200
7사단 190
187공수연대 -- 59
합계 11,862
벙커에 있는 중공군 7.62mm Ruchmoy Pulemyot 기관총
1951년 11월 영국군 포로들
한국전에 참가한 중국 공군.
적기 1대를 추락시키고 3대를 파손시켰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24일 제5차공세때
중공군 40군이 미24사단을 포위하는 모습.
제5차공세때 진군하는 중공군.
캠퍼스에 쓰여저있는 글을 읽어주고있는 중공군 장교.
허리에 방망이 수류탄을 차고 있읍니다.
중공군 T34 대포를 산정상에 숨겨놓고 있읍니다.
1953년 7월 개성 정전회담장에서 나오는 북한군과 중국군.
위의 사진들은 중공군측에서 촬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