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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생 이야기

朴正培(박정배) 2012. 7. 9. 11:50

현매홍, 김옥엽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은 서울 상경 후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많은 활동을 했다.
현매홍은 가곡, 가사, 시조에 능통했으며 김옥엽은 초창기에는 궁중무용과 서도잡가와 경기잡가
그리고 30년대 중반부터는 가곡, 가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김옥엽의 '수심가'는 워낙 뛰어나 당시 장안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연예인중 한명이었으며
문학가 김동환과의 로맨스는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현매홍은 기생조합 최초의 잡지인 '장한' 편집인중 한명으로 활동했으며
일동축음기레코드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온다.
김옥엽 역시 빅타, 콜럼비아, 태평 레코드 등에 수십장의 음반을 취입했다.






오산월

산월이란 이름은 기생중에 가장 흔한 이름중 하나였다.

손병희 선생의 후처가 명월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 유명한 평양기생 주산월이며

1920, 30년대 배따라기로 일세를 풍미한 소리꾼이 서도기생 김산월이었다.

특히 김산월은 배따라기 같은 민요, 장한몽 같은 가요곡 외에도

도월색과 이풍진 세상을(희망가)을 음반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오산월은 이들 두 산월만큼 유명한 기생은 아니었으나 외모로 볼때 상당히 유명한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영월 장학선 등과 함께 대표적인 평양기생으로 소리에도 능통했으나
연기쪽에서 많은 활동한 기생이었다. 1927년 개봉한 영화 '낙양의 길'의 주인공이었다.




윤채선 대정권번 출신으로 조선무용에 능통했다.




이옥란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국악과 양악 양쪽을 오가며 활동했다.
특히 콜럼비아레코드에 취입한 가요곡 기생수첩, 눈물의시집, 꽃같은 순정 등의 노래는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연홍 평양 기성권번 출신으로 상경하여 조선권번등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쁜 얼굴에 비해 두드러지게 활동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홍콩유학길에 오른뒤 소식이 두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