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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섬, ‘미소짓는 행복의 땅, 완도’

朴正培(박정배) 2013. 3. 28. 07:30

‘빙그레 웃을’ 완(莞), ‘섬’ 도(島). 완도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릴 때 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했다. 그도 그럴만 하다. 그림같은 바다는 축복이요, 보석같은 섬들은 행복이다.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중심에 완도(莞島)가 있다. 201개의 아름다운 섬들이 흩어져 있다. 55개 섬에는 사람이 살고 146개는 무인도다. 옥색 바다는 서해와 남해가 교차하는 청정해역으로 전복과 김, 미역과 다시마 양식으로 유명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완도는 전라도 강진 바다 복판에 있으며 육지와는 10리 거리이다. 신라 때 청해진으로서 장보고가 근거지로 삼던 곳이다. 섬 안에 좋은 천석이 많고, 지금은 첨사(僉使, 첨절제사)가 통솔하는 진영이 설치돼 있다"고 했다.

살아 숨쉬는 해상왕 장보고의 기개

 

완도읍 대신리에 있는 드라마 '해신'의 소세포 오픈세트장. (완도군청 제공)


완도는 청해진의 본거지인 만큼 곳곳에 관련 유적과 시설이 많이 있다. 완도읍 장좌리 마을 앞에 있는 장도(將島). 사적 308호인 이곳은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을 실시하던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흥덕왕 3년(서기 828년)에 장보고에게 군사 1만명을 내려 (이곳에)청해진을 설치했다"고 적혀 있다. 면적은 약 12만5600평방미터로 하루 두 차례 썰물 때에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섬에서는 토성과 목책, 매납유구, 굴립주건물지, 폐와지, 우물 등의 유적과 3만60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학계에서는 이 곳 장도가 청해진의 전진 기지와 초소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장도 맞은 편 장좌리에는 장보고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2008년 문을 열었다. 특히 장보고의 활약상은 지난 2004년 KBS의 드라마 '해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게 됐다. 당시 드라마를 찍었던 대신리 청해포구 촬영장과 불목리 신라방 세트장 등 두 곳은 모두 현재 관광객들에게 공개돼 통일신라시대 당시의 거리와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완도읍 죽청리의 장보고 동상. 높이 31.7m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이상철기자)


군외면 갈문리에는 세계적 희귀수종인 모감주나무의 군락지(천연기념물 428호)가 있다.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하여 염주나무라고도 부르는 모감주나무는 이곳에 해안선을 따라 장방형으로 총 474 그루가 있다. 생육상태도 양호해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군외면 대문리의 모감주나무 군락지. 천연기념물 제428호로 지정됐다. (이상철기자)


완도의 남쪽 해안 정도리에 있는 구계등(九階燈). 파도에 밀려 표면에 드러난 자갈밭이 여러 층의 계단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자갈밭의 길이는 약 750m로 오목한 해안선이 양쪽에서 감싸는 모습을 띄고 있다. 바닷가에는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을 맞은 동글동글한 갯돌로 가득하고 뒤쪽으로는 해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나무들이 빼곡하다.

완도군에서 가장 높은 상황봉(해발 644m)은 한겨울에도 푸른 숲을 헤치며 오를 수 있어 일년 내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정상에 서면 완도의 여러 섬들과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느리게 사는 참 즐거움이 있는 '청산'

여객선 위에서 본 청산도 전경. (이상철기자)


완도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남동쪽으로 45분.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슬로시티' 청산도가 있다. 청산도는 1896년 고종33년에 완도군에 편입됐으며 1981년 12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난 2007년에는 담양 창평, 장흥 유치, 신안 증도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인정을 받았다. 41.87평방킬로미터 면적에 2600여명이 살고 있다.

도청항에서 내려 오른쪽 해안을 따라 1km 쯤 올라가면 당리 마을이 나온다. 영화 <서편제>에서 돌담 사이 황톳길을 따라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흥에 겨워 부르며 내려오던 바로 그 곳이다. 봄이면 돌담길 안쪽으로 푸른 보리밭과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남도의 정취를 전해주고 있다.

청산도에는 '초분(草墳)'이라는 독특한 장례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올해만해도 3기가 조성됐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짚을 묶은 이엉으로 덮었다가 2~3년 뒤 뼈만 추려 땅에 묻는 이중 장례 풍속의 하나다. 김미경 문화해설사는 초분 풍습이 아직 이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예전에는 부모상이 나도 상주가 먼 바다에 나가있을 때가 많아 바로 장례를 치르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현재까지도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초분을 하면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고, 후손들에게도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들장논도 청산도를 대표하는 독특한 삶의 문화다. 구들장논이란 마치 한옥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돌로 구들을 만든 뒤 그 위에 흙을 덮어 논을 만든 것을 말한다. 다진 흙 위로는 농사에 필요한 만큼의 물이 고이고 남는 물은 아래쪽 논과 돌 틈으로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이는 돌이 많아 물이 고이지 않는 청산도의 지형조건을 극복한 것으로서 주민들의 지혜와 부지런함을 엿볼수 있다.

청산도 동촌리 상서마을의 돌담길 풍경. 돌로만 쌓은 이 곳 돌담길 또한 문화재로 등록됐다. (이상철기자)


섬의 서남쪽 구장리와 권덕리에서 올려다보이는 보적산 8부 능선 가파른 곳에는 범바위가 있다. 어미 범이 뒤따라오는 새끼 범을 돌아보는 모습의 이 바위는 호랑이가 바위를 향해 "어흥"하고 포효를 했더니 바위의 울림이 호랑이 울음소리보다 크게 울려 호랑이가 놀라 도망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범바위는 특히 자기가 강해 근처를 지나는 배의 나침반도 길을 잃기 쉬운 특성이 있다.

항일의 역사 간직한 소안, 고산의 손길 남겨진 보길

보길도 보죽면의 공룡알해변. 둥글고 굵직굵직한 갯돌이 파도를 맞는 소리가 시원하고 아름답다. (이상철기자)


보길도는 예전과는 달리 노화도 동천항에서 내려 차로 이동해야 한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가 지난 2008년 1월 개통됐기 때문이다. 동천항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큰 섬은 소안도. 소안도는 특히 일제 때 독립투쟁이 치열했던 곳으로서 현재 항일운동기념관과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미라상록수림(천연기념물 339호)과 맹선상록수림(천연기념물 340호)이 있고 동남쪽 해안으로는 갯바위 낚시터가 유명하다.

노화에서 보길대교를 넘어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섬 동쪽끝 백도리로 가면 '글씐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 바위는 조선시대 유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왕세자 책봉문제로 관직이 삭탈돼 제주 유배를 떠나던 도중 이곳에서 잠시 쉬며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시로 지어 바위에 새긴 것이다. 하지만 보길도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역시 고산 윤선도가 꼽힌다. 고산은 섬 여러 곳에 건물을 짓고 정원을 만들었다. 어부사시사를 지었다는 세연정, 거주를 위한 공간인 낙서재, 독서와 사색의 장소인 동천석실 등 곳곳에서 고산의 풍류와 멋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201개 섬 가는 곳마다 고운 모래•기암 절벽

파도에 부딪힌 고운 모래의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는 '명사십리(鳴沙十里)'해수욕장이 있는 신지도.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과 수심이 얕아 해마다 전국에서 해수욕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완도 본섬과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는 지난 2005년 12월 개통됐다. 신지도의 북쪽으로는 고금도와 조약도가 있다. 고금도에는 사적 114호 충무사가 있다. 이 곳은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본영을 설치하고 수군을 훈련시켜 노량해전에 출전한 곳으로 당시 유적과 문화재 일부가 현재까지도 전해진다. 특히 사당 앞에는 노량대첩에서 장렬히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를 석 달 동안 안치한 '월송대'가 있는데 이 곳은 아직까지도 지신(地神)의 기운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당도에 있는 초가바위. 코끼리바위, 부채바위 등과 함께 '금당8경' 중 하나. (완도군청 제공)


신지도의 동쪽 건너편에는 생일도와 평일도, 그리고 금당도가 있다. 생일도의 백운산 중턱 유서리에는 3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학서암이 자리잡고 있다. 1719년(숙종 45년) 천관사의 승려 화식(和湜)이 창건한 이 암자는 당시 섬의 여러가지 액과 화를 제거하고 인명을 구제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 남쪽의 금곡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철분이 많아 찜질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금당도는 특히 기암절벽과 모진 바닷바람을 견뎌낸 해송이 탄성을 짓게 한다. 병풍바위, 부채바위, 매바위, 초가바위 등이 해안을 따라 둘러져 있으며 무인도인 대화도에는 코끼리모양을 빼닮은 바위가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평일도 월송리 소나무숲은 산림욕의 최적지로 떠오르고 있으며 길이 3km의 '해당화해변'은 '금일명사십리'로도 불리고 있다.

〈경향닷컴 이상철기자 rigel@khan.co.kr

가는 길/

서울에서는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 종점에서 강진과 남창 교차로를 지나면 완도에 닿는다. 호남고속도로를 타면 광주와 나주를 지나 영암-강진-남창을 거치면 된다. 서울에서 거리는 약 420~470km. 부산에서는 남해고속도로로 순천과 보성, 장흥을 지나거나 강진에서 고금도로 이어지는 고금대교를 건너도 된다. 제주도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약 3시간 걸린다.



주도 면적은 0.06㎢. 섬 모습이 구슬을 닮았다 하여 주도라는 지명을 얻었다. 완도항에서 약 150m 떨어져 있으며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돼 있다. 상록활엽수림이 울창해 식물생태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상철기자)


약샘 임진왜란 당시 어느날 이순신 장군이 갑자기 몸에 병이 나 위중했는데 주민들이 이 곳 약샘물을 드시게 하자 건강을 회복해 왜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상철기자)


장도 장보고 기념관에서 바라본 장도의 모습.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했던 무역과 군사 요충지다. 1984년 사적 제308호로 지정됐으며 방어를 위한 목책과 토성 등이 남아있고 중문, 남문 등이 복원됐다. (이상철기자)


불목리 신라방 1만평방미터의 규모로 중국의 거리, 설평상단 , 무역품 거래 및 상인숙소인 이동형상단, 수로 등을 조성했다. (이상철기자)


청산도 황톳길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구성지게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청산도 당리 황톳길. 오른편 위쪽의 흰 집은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다. (이상철기자)


화랑포 화랑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산도 갯바위 해안 절경. '화랑포'는 꽃처럼 아름다운 바닷물결의 취흥에 겨워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지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해맞이와 해넘이 행사가 열린다. (이상철기자)


구들장논 청산도는 산이 많고 평지가 적어 농사를 짓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산기슭을 깎아 돌을 무릎에서 허리 높이 정도로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평평하게 다져 논을 만들었다. (이상철기자)


명사십리 완도를 대표하는 신지면의 해수욕장. 모래 입자가 마치 밀가루처럼 곱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도 깊지 않아 해마다 수많은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완도군청 제공)


부용동정원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 유적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고산이 직접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휴식을 위한 장소이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표작인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완도군청 제공)


전복 청정 바다에서 미역과 다시마를 먹고 자란 완도 전복. 예로부터 보신약재로 기력회복과 산후조리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완도는 전국 전복 생산량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완도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