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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寺

朴正培(박정배) 2010. 5. 4. 22:03

운문사는 대한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末寺이나

웅장하고 넓고 평탄한 대지가 답사해본 사찰의 규모중에 상급에 속한다.

 

운문사 홈피에서 퍼옴

 

 

 범종각(사찰입구)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

 

 

 

 

 

                                        한사찰에 2채의 대웅보전

운문사에 금당(승가대학내에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음)이란 건물은

선원내에 배치되어 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걸고 있는 보물835호

가 고려 숙종때 지은 건물로서 여러차례 重修 및 보강되어 오다  

1985년에  대웅보전이란 현판대로 문화재로 지정되어왔다.

(문화재는 건축후 장고의 세월이 지난 건물들을 보존할 가치가 있을경우)

 

 보물 제 835호대웅보전(비로전): 고려1105년에 원응국사가 지은 비로전이 근원이었음

(현지 문화유산해설사 이종기님의 전화로 확인)

임진왜란 당시 선원내의 대웅전이 소실됨에 따라 우여곡절끝에 대웅보전의 역활을 하던 본당으로서

1985년에 국가의 보물로 '대웅보전'으로 지정되어 왔음에 따라 현판을 바꾸지않은것으로 사료되며

주불로 '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보전의 주불 '비로자나불'

 

 

 

                      또 하나의 대웅보전

 

 萬歲樓뒤에 위치한 大雄寶殿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나 1997년에 새로 건축한 당우이다

사찰내에 대웅보전이 2채가 되어 어리둥절한 관광객이 의문을 갖는 당우인데

보물 제835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로전으로 환원하고 새로 지은 당우를 대웅보전으로

지정해줄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지정과정에서 개칭문제와 이미 지정된 문화재를 개칭하는

난이점으로 앞으로 주목되어질 난제이다

 

 

 

 만세루: 예불 , 각종행사장소이다

 

 명부전엔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관음전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다

 

 작압전(鵲鴨殿)에  모셔놓은"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7호

작압전은 1935년 이전에 있다가 없어진  전탑내 모셔저 있던것이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사)

 

 

 보물 제318호:다문천왕(좌)과 지국천왕(우)

사천왕은 석조여래좌상을 모셨던 전탑(없어지고 작압전을 세움) 4면에 부착되어 있던 석물이다

 

 보물 제318호:광목천왕(좌)과 증장천왕(우)

 

오백전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던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다

 

 국내에선 장수를 염원하는 보살님들의 도장인  칠성각이 사찰의 당우로 정착되다

 

 만세루에 전시된 古遺物 범종:조선후기에 만들어 사용하다 현가에서 떨어저現 梵鐘으로 교체

 

 

 法輪相

 

 감로천: 원래 취지는 예불로 래왕하는 보살님들이 洗口와 洗手용으로 사용목적이나

관광객들의 식음료와 약수역활로도 이용되고 있다.

 

 

 

 보물 제 678호:삼층석탑:신라시대 유물이며 대웅전이 소실되기전 새로지은 대웅보전 앞이나 또는

금당앞에 있어야하는데 보물 제 835호 대웅보전(원래는 비로전)앞에 위치한 이유가

좀 어리둥절하게 한다. 긴 세월동안 대웅전의 역활을 한 당우에 따라 옮겨진것이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비로전을 지키는 해태:좀 오래된 석물인듯한데 문화재적 표지석이 없는걸 보면 문화유산적

가치는 없는듯하다

 

 

상기 그림의 석등은 보물 제835호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것으로 아래 보물 제193호 석등을

모방한것이다

 

 


보물 제193호석등: 금당(선원내 승가대학건물:승가대학 3학년학생 도장)앞에

세워져 있다(백과사전 퍼옴)

원래 있었던 "금당"은 선원내에 보물835호의 앞  담넘어 건물이며 외부출입통제지역이므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운문사 금당 앞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바닥돌과 하나로 이루어진 아래받침돌에는 여덟 장의 잎을 새긴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가운데기둥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으며, 윗받침돌에는 각 면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경쾌한 모습이며,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각 부분이 잘 균형을 이룬 우아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금당이란 본존불을 모시는 伽籃의 중심건물로서 금색의 본존불이 내부에 안치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연유되는데 운문사 금당은 원응국사가 창건당시  있던 대웅전 당우로 사료된다 

 

 

 보물 ?316호:圓應國師碑

 

원응국사비:자료는 문화재청 자료를 퍼옴

운문사에 있는 이 탑비는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비가 깨어져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짐작된다.

 

 중앙비각내에 원응국사비가 안치되어 있다.

 

 보물 제208호 靑銅壺:백과사전에서 퍼옴

 이 청동호(靑銅壺)는 신라말기의 제작으로 추측되며  재료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 모양인데 몸체의 좌우에 견고한 고리가 붙어 있고 그 위에는 둥근 뚜껑이 있다.

  그 용도는 확실치 않으며   뚜껑 중앙에는 꼭지가 달려 있는데 그 끝에는 불꽃무늬 그 밑에는

 꽃잎 장식과 둥근 마디가 있다. 

 몸체 새겨진 명문(銘文)을 보면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개조하였고 무게는 30근이었다고 한다.

  또한 감로준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운문사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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