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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자 / 법정스님

朴正培(박정배) 2013. 12. 4. 18:58

 

법정스님의 나무의자

 

 

 

 

"나를 보려거든 불일암으로 오라"

 

 

법정스님이 입적을 하기 이틀 전인 3월9일, 목포에 살고 있는 스님의 사촌 누나가 현장스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병석에 누워계신 법정스님을 만났다. 누님은 손을 잡고 "스님 아파서 마지막으로 보러왔다"며 울먹이자, 스님은 마지막이 아니라고, 다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가면 볼 수 있느냐고 하니 "불일암으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스님의 책을 읽다가 불현듯 불일암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왠지 스님이 그립고, 만나고 싶었다. 다비식을 하던 날 버스표까지 사 놓고 갑자기 일이 생겨 가 뵙지 못했던 아쉬움이 늘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지나고 나니 가도 될 일이었는데…

 

 

저 안의 가슴으로부터 생각이 오면 때를 놓치지 말고 실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터득한 진리가 아닌가? 표까지 구해놓고 다비식에 가지 못했던 후회가 어리석은 앙금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배낭을 챙겨들고 부랴부랴 남녘으로 차를 몰았다.

 

 

내가 법정스님의 글을 처음 읽게 된 것은 1978년 발행된 <서 있는 사람들>이란 법정스님의 수상록이었다. 샘터사에서 발간한 이 책은 횡서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되어 있다. 젊은 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붐비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방황을 하며 암울했던 시기였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둘레에는 부쩍 <서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차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제자리에 앉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똑 같은 자격으로 차는 탔어도 앉을 자리가 없어 자신의 두 다리로 선 채 끝도 없이 실려 가고 있는 것이다."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시대 나 역시 서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는 스님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왠지 나의 맏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스님이 발간한 책이라면 거의 구입해서 머리맡에 두고 읽곤 했다. 내 서가의 한켠에는 스님의 책이 빼꼭히 들어 차 있다. 스님 덕분에 나는 책 부자가 되어 있었다.

 

 

 

 

스님의 책을 읽을 때에는 늘 스님이 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께서 곁에 앉아 조용조용 이야기를 들려주듯, 삶의 갈증을 해소해 주듯 스님의 글은 내 영혼을 달래주곤 했다. 스님의 책은 나의 스승이었고, 형님 같았으며, 다정한 도반 같기도 했다.

 

 

스님께서 입적을 하신 뒤 나는 다시 스님의 오래된 책들을 읽고 있다. 책들은 빛이 바래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난다. 글씨는 깨알처럼 작다. 그 중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횡서로 되어있는 아주 오래된 책으로 1975년 이후 불일암에 칩거하면서 세상과 글로서 소통을 하며 쓴 내용이 대부분이다.

 

 

 

송광사 입구에 들어서니 고요한 산사 입구에는 매화 한그루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스님의 영혼처럼 맑고 향기롭게 피어 있는 매화를 만나게 되니 스님을 만나듯 반갑다. 매화나무를 지나니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라는 입석이 나오고, 청량각(淸凉閣)이란 누각이 나온다. 누각 밑으로 조계산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맑고 청량하게 느껴진다.

 

 

  

 

냇물을 따라 가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섞이어 울창한 숲을 이루는 길이 이어진다.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한가롭게 길을 걸어간다. 송광사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연못가에 <불일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서 있다. 시리도록 맑은 연못에 얼굴을 비추이며 지나가니 곧 대밭으로 이어진다.

 

 

푸른 대밭과 삼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대밭에 들어서니 어느 듯 속세를 떠난 기분이 든다. 호젓한 대밭이 끝나면 바로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진다. 돌과 나무뿌리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오솔길을 20여분 정도 오르면 다시 삼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삼나무 숲 입구에는 불일암을 뜻하는 "ㅂ"자와 연꽃, 그리고 화살표가 나무 기둥에 그어져 있다.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인지 오래된 나무기둥 만질만질하다. 스님께서도 이 기둥을 만지고 가셨으리라.

 

작은 시내에는 삼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오르면 다시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 대나무 숲에서 스님을 찾아 온 제자들은 불일암에 수도를 하고 계시는 스님을 향해 "스님~" 하고 부르기도 했다는 곳이다. 대숲을 걷다가 왠지 나도 스님을 불러보고 싶어진다. "법정스님~" 암자를 향해 큰소리로 스님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 대신 우우 하며 대나무 소리만 메아리쳐 온다.

 

 

 

 

대숲터널을 지나니 송광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대나무로 만든 낮은 사립문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사립문 사이로 신우대길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정진중! 山門을 닫습니다. 출입삼가 바람!" 이란 나무 팻말이 사립문에 달려 있다. 방문객이 얼마나 자주 왔으면 이런 팻말을 달았을까?

 

세상에 스님의 명성이 알려지자 방문객이 잦아졌고, 스님은 자신의 삶의 철학 을 지키기 위해 1992년 홀연히 17년 동안 정든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작은 오두막으로 옮겨 다시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사립문을 열고 신우대 터널을 지나면 이윽고 <불일암>의 제법 넓은 뜰이 나온다.

 

 

 

 

<불교신문> 주필과 <씨알의 소리> 발행에 참여했던 스님께서는 1975년 모든 직함을 버리고 이곳 불일암으로 내려와 칩거에 들어갔다. 스님이 불일암으로 내려오게 된 동기는 그해 봄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사형집행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스님은 손수 불일암을 지어 칩거하며 한 달에 한 편의 글로써 세상과 소통해 오면서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며 청빈의 도를 몸소 실천하였다. 스님은 몸소 텃밭을 가꾸며 청빈낙도의 길을 걸어갔다.

  

 

 

 

암자 입구에는 동백이 화사하게 피어 길손을 반긴다. 텃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불일암>의 작은 법당이 정갈하게 들어 서 있고, 맞은편에는 요사채로 보이는 작은 집이 하나 있다. 오른 쪽 대숲 밑에는 우물이 하나 있고 그 옆에 대나무로 만든 움막이 하나 있는데 스님의 욕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대나무로 만든 움막 아래 칸에는 재미스럽게 보이는 구멍이 하나 개구멍처럼 뚫려 있다.

 

 

텃밭을 지나 법당에 이른다. 법당 앞에는 작은 돗자리 하나가 마당에 떨렁 깔려 있다. 법당의 댓돌에는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스님께서 몸소 만들었다는 나무의자가 허허롭게 놓여 있다. 암자 주변은 고요하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모든 사물이 스님의 영혼처럼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방문객들도 말이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방문객들은 한 평의 돗자리에 엎디어 절을 한다. 아무도 없는 법당을 향해서 정성스럽게 절을 한다. 그것은 방문자의 마음과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고 하는 절이리라. 돗자리에 엎디어 절을 하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절을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매화 몇 송이가 스님의 미소처럼 은은하게 피어 있다. 옹구로 만든 굴뚝이 무척 정겹게 느껴진다. 매화 향기를 맡으며 뒤꼍으로 돌아가니 스님께서 즐겨 쓰셨다는 대나무 평상이 주인을 잃고 벽에 기대어 있다.

 

 

뒤꼍을 돌아 나오니 벽에는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애 살어리 랏다"란 작자 미상의 <청산별곡>이 오래된 나무판에 파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어쩐지 스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구절 같아 마음이 애절해 진다.

 

 

 

 

헌기와를 주워 모아 연꽃모양으로 만든 작은 연못도 재미있게 보인다. 이 작은 연못의 물에 수련을 띠우거나 스님의 얼굴을 비춰보았겠지. 거울이 없는 절간은 이 연못이 거울 역할을 했으리라…

 

 

연못 옆에는 옹구로 만든 굴뚝이 삶의 이정표처럼 서있고, 오래된 장작더미가 가지런히 쌓여져 있다. 그 장작더미 밑에는 노란 수선화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은 자리에 피어났다는 신화를 간직한 꽃이 아닌가!

 

 

 

 

스님은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얼굴을 저 연못에 비추어 보았을까? 수선화 옆에 졸졸 흘러내리는 펌프꼭지에서 물을 꿀꺽꿀꺽 퍼마시며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버린다.

 

 

다시 법당 앞에 돌아와 스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의자에 다가간다. 어쩐지 정감이 가는 의자다. 투박하지만 의자는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풍긴다. 아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차지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제 모두 내려가고 우리 일행 네 사람만 남아있다. 의자에 앉아 기념촬영도 했다.

 

 

스님께 다소 미안한 생각을 하며 의자에 앉아본다. 스님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다. 앞을 바라보니 녹슨 등불이 참나무 기둥에 투박하게 얹혀있고, 그 등불 뒤로 푸른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대나무 숲 뒤로는 조계산 자락이 보살의 품처럼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스님께선 이 의자에 앉아 푸른 대숲을 바라보며 명상에 젖었겠지. 스님의 글을 읽어보면 유난히 대숲을 좋아하셨다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스님의 성품 또한 대쪽처럼 곧고 정직하며 언행이 일치했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법당에서 내려와 텃밭을 자세히 살펴보니 스님께서 즐겨 잡수셨다는 갓이 싱싱하게 돋아나 있다. 갓김치를 맛나게 드셨을 스님을 생각하니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중생이란 이런 것이다. 텃밭에는 목련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새순을 밀어내고 있다. 불일암에서 보낸 17년의 세월이 이 텃밭에 묻어있는 것 같다. 스님의 손길과 발자국이 무수히 남아 있을 텃밭이 아닌가!

 

 

 

 

 

텃밭의 오른 쪽에는 작은 요사가 하나 있다. 요사의 댓돌에는 털신이 한 켤레 놓여 있고, 마루에는 밀짚모자가 덩그러이 놓여 있다. 벽에는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이 하나 걸려있다. 스님은 홀로 공양을 하면서도 목탁을 쳤을까? 요사의 오른 쪽에는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리고 장독대 앞 선반에는 먹다 남은 고추장과 된장, 매실 장아찌가 일렬로 놓여있다.

 

 

요사의 왼쪽에는 새로 팬 장작더미가 수북이 쌓여있어 절집이 풍성하게 보인다. 뒤꼍에는 갈퀴, 낫, 호미, 망치, 도끼 등 연장도구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을 유난히도 좋아하였던 스님은 손수 지은 방 한 칸짜리 오두막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들여놓고서 살아간 소로우처럼 홀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을 하며 살기를 원했다.   

 

 

 

 

요사 아래에는 양철로 뚜껑을 덮은 우물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바로 건너편에는 작은 해우소가 대숲에 서 있다. 해우소 입구에는 대나무로 가려져 있고, 작대기를 받친 지게가 주인을 기다리듯 서 있다. 그 모든 것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들만 제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간소한 최소한의 물건들로부터 스님의 말씀이 새삼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는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 있는가에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에서

 

 

 

 

 

법당에 합장 배례하고 암자 사립문을 나서는데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 납자 한분과 털모자를 쓴 젊은 스님과 마주쳤다. 두 분의 눈이 수정처럼 맑게 보였다. 푸른 납자! 스님들께 합장을 하고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하고 물으니 "저희들은 아래 송광사에 있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오른 쪽으로 가면 송광사가 나오나요?" "네, 그 길로 죽 내려가시면 송광사에요" 아는 길이지만 괜히 스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두 스님은 합장을 하고 대나무 숲길을 따라 표표히 사라져 갔다.

 

 

송광사로 이어지는 우측 샛길로 접어들었다. 샛길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고, 동장군에 시달리던 진달래가 몇 송이 피어 있거나 꽃봉오리가 맺혀있기도 했다. 나는 문득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오시는 스님을 본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려면 이십 리 남짓한 산길을 넘어가야 한다……. 길은 외줄기였다. 높은 가지 끝에서는 산바람이 우우 울고 있었다. 어름 풀린 골자기 물소리가 저 세상에서처럼 들려왔다.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뜻밖의 꽃내음에 발길이 멎었던 것이다. 이윽고 산죽(山竹)이 청청하게 자란 길섶에서 난초를 찾아냈다. 한 그루도 아니고 길섶을 따라 무수히 깔려 있었다. 어떤 것은 꽃대에 물이 올라 터질 듯 부풀었고, 더러는 반만 문을 열어 그 맑은 꽃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화분에서가 아니고 야생 그대로의 난초가. 그것은 나그네를 설레게 할 만큼 커다란 감동이었다.

 

-<서 있는 사람들, 수묵 빛 봄> 중에서

 

 

 

 

 

 

 

 

진달래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스님께서 떠나신지 오늘로 27일, 스님의 49재중 사재를 맞이하는 날이다. 스님의 육신은 가셨지만 스님의 영혼은 저 꽃들처럼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