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강서당은 이서면 학산동의 모산 마을 삼성산 지맥의 기슭에 있으며 앞에는 아담한 용강연지의 잔잔한 맑은 물을 아름다운 연꽃과 연잎이 단장하여 아름다움을 이루고 우측에는 학이 날아가는 듯한 학산이 뻗어 감싸고 있으며 남산의 수려한 모습이 그림같이 솟아 있고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멀리에는 백곡토성의 구릉이 아롱거리며 그 어깨 위로 솟아 있는 웅장한 용각산이 넘어 보이는 한 폭의 그림이다. 이 곳은 청도역에서 서북으로 약 10k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송은 선생의 영당, 강당, 모의정, 14의사, 비각, 종무실, 좌우고자실, 창고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 서당은 원래 이조 초에 처음으로 청도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 입(入) 청도 조(祖)인 밀성인 사직공 박 건 선생의 묘재인 용강재(龍岡齋)였는데 선생의 후손으로 임진 왜란때 창의공신인 14의사의 사당을 건립하여 숭의사(崇義祠) 또는 충열사(忠烈祠)라 이름하고 1819(순조 19년)부터 봉향하였고 이 서당은 송은 박 익 선생과 선생의 손자인 사직공 박 건 선생을 향사하던 곳으로 용강서원(龍岡書院)이라 하였다. 1868년(이조 고종 5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용강서당으로 개칭하였고 그 후 여러 번의 수리,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송은 선생의 영당은 원래 14의사를 봉향할 때 주벽(主壁)으로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하던 것을 1914년에 영당을 새로이 창건 봉안하여 춘추에 향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선생의 진영(眞影)은 이곳 용강서당에 봉안하고 사본은 단성(丹城)의 신계서원(新溪書院)과 밀양의 모선재(慕先齋)에 각각 봉안하고 있다. 숭의사, 또는 충열사라 하던 것을 모의정(慕義亭)으로 개칭하였다. 송은 박 익 선생은 휘가 익이오 초명은 천익이며 자는 태시로 본관은 밀성이고 호는 송은이며 밀성부원군 박언부 선생의 8세손이며 은산부원군 박영균 선생의 장자로서 고려말의 충신이며 8은의 한 사람으로 정포은, 이목은, 길야은 등 여러 선생들과 교의가 깊었다. 사직공 박 건 선생의 휘는 건이오 호는 소고 또는 두곡이며 본관은 밀성이고 송은 박 인 선생의 손자로서 무예에 출중하여 사람들이 진장부(眞丈夫)라 하였다. 이조 초에 밀양 서면의 삽포리에서 청도에 들어와 시거한 밀성 박씨의 입청도조이다. 14의사는 임진왜란에 밀성 박씨 문중의 부자 형제, 종반숙질(從班叔侄) 등이 창의(倡義)하여 훈공을 세운 충의지사로 삼우정 박경신, 용연 박경인, 제우당 박경전, 국헌 박경윤, 증좌승지 박경선, 괴정 박선, 운옹 박찬, 행와 박린, 기포 박우, 진사 박근, 용암 박숙, 중추부 동지 박지남, 박철남, 판관 박구 등 14선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