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 푸른 바다, 해안선을 따라 동해남부선 열차가 ‘칙칙폭폭’ 지나간다. 해물과 갖은 야채로 멋을 낸 스파게티를 사이에 놓고 창가에 오붓하게 앉은 연인의 사랑이 익어간다. 파도와 함께 일렁이는 라이브 음악도 낭만적이다. 송정바닷가를 따라 줄줄이 서 있는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맛을 먹고 분위기에 취한다. 송정터널과 송정바닷가 사이의 광어골은 최근 5~6년 새 급속도로 발전한 부산의 맛거리다. 연인들을 위한 호젓한 레스토랑이 처음 자리잡은 뒤 음식점들이 줄줄이 들어서 현재 30여 곳에 달한다. 연인들의 ‘밀회’장소에서 요즘에는 가족단위 음식점 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매립되기 전 광어가 뛰놀았다는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광어골이라 불리고 있다. 송정바닷가 드라이브에 나선 마이카족들은 일단 깔끔하고 예쁜 건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송정해수욕장과 인접한데다 구덕포로 넘어가는 초입이고 달맞이언덕의 끝자락이란 지리적 이점도 이 곳의 번성에 한몫했다.
광어골의 원조 음식점은 모닝캄(703-9229)이다. 모닝캄 주인 정병삼씨는 “7년 전 온통 숲과 과수원뿐이던 이 곳에 레스토랑을 짓자,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고 말했다. 그 땐 이 곳에 겨우 사람 한둘 다닐 만한 샛길뿐이었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해산물 요리는 그야말로 별미다. 모닝캄의 바닷가재 요리는 값(1인분 3만4천원)이 비싼 것이 흠이지만 특별한 날 식도락가의 구미를 당기기 충분하다. 가재 배를 갈라 소라 새우 당근 피망 양송이 등 해산물과 야채를 넣고 소금 후추 생크림 등으로 맛을 낸다. 이 집의 원두커피도 별미. 생원두를 갓 볶아 맛을 낸 커피가 부드럽기 그지없다.
모닝캄을 중심으로 나나이모 카리브 솔베이지 등 분위기 만점의 레스토랑이 도열해 있다. 근래 들어 레스토랑 일색이던 광어골은 기장 방향으로 갈비집 만두 칼국수 전문점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광어골 한정식집(703-5212)은 가마솥밥으로 고향의 향수를 불러준다. 7천원에 15종류가 넘는 반찬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가마솥밥을 먹고 나면 구수한 숭늉을 덤으로 맛볼 수 있다. 단 한번에 80인분의 밥을 짓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 가야 차진 밥을 먹을 수 있다. 광어골 가마솥은 오전 10시와 오후 6시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싼 값에 친절한 서비스와 맛난 요리를 함께 즐기고 싶다면 송정버섯전골(704-0089)에 들러보자. 부산에서 보기 드문 버섯요리 전문점으로 자연산송이 팽이 느타리 표고 양송이 새송이 등 갖가지 버섯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버섯매운탕 1인분 4천5백원, 버섯튀김 5천원, 버섯전골 7천원, 한우버섯 샤브샤브 1만2천원. 임금에게 바치던 궁중요리의 맛을 그대로 살린 신선로전골(2만원)은 이 집이 자랑하는 메뉴.
은밀한 데이트를 하려는 ‘아베크족’들은 맞은편 해돋이방갈로(704-0607)를 가보자. 마당에 따로 지어진 방갈로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칠 수 있다. 10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영덕대게 안주도 있지만 3만~5만원대 모듬요리도 먹을 만하다.
2. 초량 돼지갈비 골목
매캐한 연기 사이로 비계 섞인 돼지갈비가 구수하게 익어간다. 고된 하루를 마친 부두 노동자들이 둥근 양철판에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힘든 노역에 지친 노동자들은 한잔 두잔 술기운에 어깨를 짓누르던 피곤을 잊어버린다. 60년대 초량 갈비골목에서 노동자들은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돼지갈비의 대명사로 통하는 초량. 초량 아닌 곳에도 초량갈비의 간판이 즐비한 것만 봐도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값이 쌀 뿐만 아니라 수은 납 등 중금속을 해독하는 효과가 있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돼지갈비 골목의 원조로,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부산역 부산항과 인접한 초량 돼지갈비 골목에는 서민들의 웃음과 고단함이 아직도 짙게 배 있다. 1인분에 4천원,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덕분에 한 가족이 먹어도 2만원이면 거뜬할 만큼 서민적인 가격이다. 푸짐하게 올려 놓은 고기에 넉넉한 인심이 있으니 별다른 반찬이 따로 필요없다. 고기를 먹고 난 뒤 김치와 시래기국으로 공기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초량시장을 지나 부산고등학교 쪽으로 돼지갈비 전문점이 2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예전의 연탄불이 가스불을 거쳐 최근에는 숯불로 바뀌었다. 은하갈비와 남해집은 30년 넘게 이 곳을 지켜 온 터줏대감들.
은하갈비(467-4303)의 메뉴판에는 쇠고기 삼겹살 생갈비 돼지목살 등이 나열되어 있지만 주메뉴는 뭐니뭐니해도 돼지갈비. 은하갈비에서 돼지갈비를 주문하면 넉넉한 양의 갈비와 파절이 마늘 간장 고추장 상추가 한 상 푸짐하게 올라온다. 이 집 돼지갈비는 손으로 직접 썬 뒤 양념을 해 숙성시킨 것이다. 마늘 참기름 간장 등 10여 가지의 양념으로 진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주인 정재구(64)씨는 “80년대만 해도 돼지갈비를 먹을 곳이 여기 밖에 없으니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손님 부류도 변해 왔다고 한다. 60년대는 술손님이 많았으나 70년대는 부부계가 붐을 이뤘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대부분이 가족단위의 손님이라고 한다. 술손님이 줄어 요즘에는 밤 12시면 문을 닫는다.
남해집(468-3075) 임윤심(74) 할머니는 33년째 이 자리에서 돼지갈비만 팔았다. 임 할머니가 이 곳에 돼지갈비집을 차리기 전에, 돼지국밥집을 하던 어느 할머니가 이미 돼지갈비를 팔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임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그 때 돼지국밥집 할머니가 초량 돼지갈비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돼지갈비 골목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평산옥도 돼지수육과 국수, 독특한 장맛으로 유명하다. 은하갈비에서 국토관리청 쪽으로 5분 정도를 걸어가면 허름한 모습의 평산옥이 나타난다. 예닐곱 평 남짓해 초라하게 보여도 이 곳은 100년 가까운 역사와 4대를 대물림한 손맛을 자랑한다. 국수 1천원 돼지수육 3천원, 전국에서 가장 싼 가격이지만 맛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이 집 국수는 우려낸 육수에 말아 주는데, 출출할 때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돼지수육이라면 인근 부산식당(441-8616)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인 2세 아주머니의 중화수육(1만~2만원)은 담백하면서도 쫄깃하다. 신선한 삽겹살과 사태를 진한 육수에 삶아 내는데, 삶는 과정에서 지방질이 제거돼 부드러운 육질을 자랑한다.
3. 금정구 금샘로
봄에는 흰 벚꽃이 향기를 뿌리고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자태를 뽐내는 금샘로는 사시사철 달라지는 표정만큼 먹거리도 다양하다. 금샘로는 범어사 입구에서부터 구서동 우성아파트 앞까지 약 3㎞에 걸친 외식타운으로, 금정산에 있는 ‘금샘’이라는 우물에서 이름을 땄다. 금샘로는 130여개의 레스토랑 음식점이 빽빽히 들어서 있어, 한식 양식 일식 중식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데다 빼어난 금정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 해운대 달맞이길이 부럽지 않다. 낮에는 밥집이 붐비고 밤에는 분위기있는 데이트 거리로 변신하는 금샘로는 3~4년 전부터 음식점이 급격히 늘어나 인근 아파트타운의 주민들은 물론 마이카족들의 외식거리로 인기를 얻고 있다.
24시간 문을 여는 약수터해장국(516-5511)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지난 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시원한 해장국을 먹이기 위해 손에 냄비를 든 주부들이 줄을 서곤 한다. 북어와 새우를 참기름으로 볶아 국물맛이 진한 콩나물해장국(4천원)은 속풀이에 그만이다. 보리밥(4천원)은 냉면그릇에 내놓는데, 열무 콩나물을 넣고 비벼 먹으면 어느새 입맛이 돌아온다. 값이 저렴하고 맛도 좋아 아침밥으로 먹는 단골손님도 많다. 식사 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은 공짜.
고풍스런 느낌의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경희궁(517-9292)은 샤브샤브 전문점이다. 참다랑어로 맛을 낸 육수에 얇게 썬 쇠고기를 살짝 데쳐 땅콩과 마요네즈로 만든 소스에 찍어 입 안에 넣으면 쇠고기가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다. 쇠고기와 푸짐한 야채가 나오는 상추쌈 샤브샤브(9천원)가 이 집의 인기메뉴. 고기와 야채를 데친 육수에 버섯 깻잎 당근이 들어간 구수한 영양죽(2천원)을 비벼 먹으면 배가 부르다. 전복 한치알 새우 등 12가지의 싱싱한 해물이 푸짐한 해물 샤브샤브(1만8천원)도 먹어 볼 만하다.
갈비라면 이 곳에서 10년 전에 터를 잡은 압구정갈비(512-0025)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이 제주 울릉도 안동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한우를 사와 고기맛이 일품이다. 양념하지 않고 즉석에서 구워 먹는 생갈비(1만3천원)는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이 난다. 이 집에서 갈비 못잖게 인기를 누리는 게장은 별미다.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물엿 산초가루 등 온갖 양념을 듬뿍 넣어 맛을 내는데, 게가 크고 싱싱해 살이 씹힌다. 게장 한 그릇 추가 땐 따로 3천원을 더 내야한다.
선미아구찜(514-1212)의 별미는 해물아구찜(2만~3만원)이다. 콩나물 미나리에 마늘 고추 등 20여가지 양념을 듬뿍 넣은데다 소라 고동 해삼 담치 등의 각종 해산물을 넣어 씹히는 맛도 그만이다.
전골전문 수미르(583-3200)는 일·한식 퓨전음식으로 눈길을 끈다. 연어구이 냉채 등 푸짐한 일식 전채요리가 먼저 상에 오르고, 돌그릇에 익혀 먹는 한식 전골이 나오는데, 쇠고기 버섯 닭살 곱창 등 네 가지 종류(2만8천~4만8천원)가 있다. 표고버섯 느타리 새순버섯 등을 사용한 담백한 버섯전골은 식사로, 얼큰하고 매운 곱창전골은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한우사골을 우린 육수는 우려낼수록 맛이 나므로 건더기를 먼저 먹고 나중에 국물을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먹다 남은 국물에 면사리와 공기밥을 비벼준다.
4. 문현동 곱창골목
연탄, 양철 식탁, 닳을 대로 닳아 오히려 윤이 나는 구이철판…. 해질 무렵 문현동 곱창골목은 구수한 곱창 연기로 자욱해진다. 문현동 곱창골목에선 시간을 10년쯤 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 같다. 연탄불에 노릿노릿하게 익어 가는 곱창,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연기, 구수한 고기냄새, 낮은 천장, 문짝마저 떼어 버린 입구. 나지막한 건물들은 구식 영화 간판이 꼭 어울릴 것 같다. 문현고개의 문현4파출소를 중심으로 열세 곳의 곱창집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쫄깃쫄깃한 곱창 맛이 일품이다. 집마다 손맛과 양념이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 구수한 곱창의 깊은 맛은 엇비슷하다. 지난 시절 추억의 정취가 살아 있어 복고풍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문현동 곱창골목은 70~90년대를 배경으로 대박을 터트렸던 영화 친구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자갈치가 소곱창집들이 밀집된 곳이라면 문현동은 돼지곱창 거리로 유명하다. 값도 저렴하고 연탄불에서 익히며 직접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해 주당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1인분 5천원짜리 구이는 물김치 파절이 상추 고추 마늘과 함께 차려져 푸짐하다. 시래기국이나 콩나물국이 곁들여져 나오는 공기밥 한 그릇에 1천원이 추가된다. 밥까지 비벼 먹을 수 있는 전골도 메뉴판에 있지만 손님 90%가 구이를 찾는다고 한다. 돼지 곱창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지방을 잘 벗겨 내야 구울 때 연기도 적고 제맛이 난다. 지방을 제거하고 껍데기를 벗겨 내면서 30% 정도는 버려지고 나머지 70%만 상에 올라간다. 곱창 맛은 고추장 마늘 생강 후추 참기름 설탕 간장 등이 버무러진 양념이 좌우한다. 곱창을 불에 올리기 전과 구울 때 두 번 양념을 발라 속까지 골고루 스며들게 한다. 이렇게 구운 곱창은 맵지 않고 느끼하지도 않아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곱창구이는 일본에선 ‘호르몬 야키’라는 스태미나식으로 인기가 높은 별미.
62년 문을 연 양산식당(635-1571)은 2대를 대물림하며 전통을 자랑한다. 양산식당보다는 할매곱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점포를 처음 열었던 주인이 사십대에도 백발이 많아 사람들이 할매라 부르면서 할매곱창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2대째 주인 김수성(49)씨는 “돼지 곱창은 연탄불에서 서서히 익혀야 제맛이 난다. 한때 가스불로 바꿨다가 손님들이 금세 맛의 차이를 알아채는 바람에 다시 연탄불로 되돌렸다”고 말했다.
칠성식당(632-0749)은 깡패인 준석과 유학생 상택이가 해후하며 찐한 소주잔을 나누었던 바로 그 장소다. 영화에서는 10분도 채 안 나왔지만 영화의 여운은 칠성식당은 물론 곱창거리 전체에 짙게 배어 있다. 14평규모의 1호점이 모자라 2호점에도 저녁에는 줄을 서야할 정도로 손님이 꽉꽉 차는 칠성식당의 주인 김숙의(62)씨는 “소창은 연해서 찾는 사람이 많지만, 오래 씹어야 제맛이 나는 대창에 곱창의 진미가 있다”고 말했다.
5. 장안사 메기매운탕 거리
청명한 하늘 아래 주렁주렁 달린 붉은 감이 가을을 알린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사에는 아름다운 가을이 깔리고 있었다. 명산명소에 빼어난 음식점이 빠지지 않듯 고즈넉한 장안사로 가는 4㎞정도의 길가에는 50여개의 음식점들이 빽빽하다. 메기매운탕을 비롯, 백숙 한우불고기 등의 다양한 먹거리가 고찰을 찾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운다. 장안사 입구하면 자연스레 메기매운탕을 떠올릴 정도로 장안사 입구 메기매운탕이 명성이 자자한데, 장안사 근방에서 잡히지도 않는 메기가 매운탕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까닭은 뭘까. 장안 메기매운탕 거리가 형성된 유래를 장안사를 지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감나무집(727-9145)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감나무집은 시어머니를 따라 며느리가 2대째 가업을 이어 가고 있어, 이 곳 음식점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 며느리 박복성(47)씨는 “장안사와 척판암에 공부하던 고시생들이 많았는데, 고시생 몸 보신 시켜 주려고 계곡서 고기를 낚아 매운탕을 끓여 주었던 것이 장안사 매운탕의 효시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장안사 계곡에서는 중태기라는 민물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몸 보신에는 그만이었다고. 중태기는 버들치라고도 불리는데 차고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산다. 지금도 감나무집에서는 중태기매운탕(2만~3만원)을 내놓는다. 무 감 호박 우거지 미나리 부추 팽이버섯 등 함께 내놓는 밑반찬이 푸짐하고 매운탕으로 끓여진 중태기를 건져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가락 하나 크기가 입 안에서 담백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무엇보다 갓 수확한 감으로 만든 감 장아찌가 이 집의 별미. 원한다면 집 뒤의 감나무 밭에서 감 따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능이버섯 고추 마늘 등 각종 반찬과 음식재료는 대부분 산이나 들에서 캐어온 순 자연산이다. 닭백숙(2만5천~3만원)도 집에서 직접 기른 촌닭을 재료로 만든다.
장안매운탕(727-0679)은 장안사 메기매운탕을 있게 한 일등공신. 맵고 얼큰한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는데 최근 시설을 보수하고 새롭게 단장했다.
무룡매운탕(727-7436)은 시원한 장안 배를 양념으로 사용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낸다. 흠이 난 배를 고아낸 농축액으로 고추장과 된장을 담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이 없다. 메기매운탕(2만5천~3만5천원)과 함께 나오는 배농축액은 환절기 감기에 좋다고 한다. 배농축액에 갖은 양념을 한 오리구이(2만5천원)는 맵지 않아 아이들도 좋아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물레방아(727-6200)집도 들러 볼 만하다. 전국의 민속 잡동사니를 죄다 모아 전시해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데, 황토집에 앉아 깨끗한 공기를 넉넉하게 마실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다. 2~3명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약계탕(3만5천원)은 인삼 구기자 오미자 등 12가지 한약재가 들어간다. 다실에 들러 운치있는 풍경을 벗삼아 차만 마셔도 즐겁다.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찾을 만한 곳도 있다. 장안사손칼국수(727-6473)는 3천원 짜리 손칼국수가 먹음직하다. 새우 다시마로 맛을 낸 국물에 손으로 반죽한 국수와 감자 호박을 넣고 끓여 낸 푸짐한 칼국수가 맛깔스럽다. 콩을 삶아 손으로 짜낸 맷돌두부(6천원)와 파전(7천원) 맛도 남다르다.
6. 부평동 족발골목
포장마차의 네온, 노점의 불빛, 화려한 영화간판이 번쩍이는 남포동의 밤거리. 10, 20대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청춘의 거리지만 이미 구세대가 되어 버린 30, 40대의 기성세대들의 가슴에도 남포동의 낭만은 꿈틀거린다. 1980년대 청춘을 남포동에서 보냈던 사람이라면 부산 중구 부평동 족발골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영화거리에서 약간 벗어나 부평시장 쪽으로 난 길을 가로지르는 일방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족발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해가 지고 네온이 불을 밝히기 시작하면 족발집에는 소줏잔 부딪히는 소리 또한 유난히 커진다. 찬 음식에 속하는 족발은 소주 안주로 궁합이 딱 맞는 음식. 또 해산한 산모가 젖이 잘 안나올 때 삶아 먹으면 좋은 보양식, 일본 오키나와 장수마을에서는 식탁에 빼놓지 않고 올라가는 장수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20년 전부터 부평동 거리에 족발집이 한두 곳 생겨나기 시작해 현재 족발전문점은 12곳에 이른다. 족발가격은 2~3인분 1만 8천원, 4인분 2만원, 5인분 2만3천원으로 12곳 모두 같지만 자랑하는 족발 맛만은 각기 다르다.
하얀색 간판이 먼저 눈에 띄는 한양족발(246-3039)은 일본식 건물 구조가 말해주듯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메뉴도 족발 단 한 가지, 식단도 5~6가지 반찬이 전부지만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 하나 하나가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하얀 배추김치, 셀러리로 맛을 낸 오이냉채, 파란 파가 송송 썰어져 시원한 콩나물국 등이 입맛을 돋운다. 족발은 계피 감초 대추 통후추 통마늘 대파 등 15가지 한약재를 넣어 색과 맛을 내는데 족발 30개가 들어갈 정도의 커다란 솥에서 끓여 낸다. 150도의 고온에서 족발을 넣은 후 두 차례 지방을 제거해 그 맛이 담박하면서도 쫄깃쫄깃하다. 한약재를 끓인 물은 버려지지 않고 약재를 넣는 과정을 반복해 사용되는데 이 물이 오래될수록 맛이 좋아진다는 것이 주인 양순애(56)씨의 설명이다. 양씨는 “처음에는 캐러멜로 색을 냈으나 하루만 지나면 굳어지면서 변색되는 것을 보고 아니다 싶어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약재를 써보니 상큼한 맛이 나더라”고 말했다. 남은 음식은 싸주는데 양념과 채소, 족발을 각각 따로 싸 집에 가서 먹어도 좋다. 차게 먹는 음식이라 야외 도시락 주문도 많은 편이다.
부산족발(245-5359)은 오향장육 족발이 별미다. 이름은 오향장육인데 중국 음식인 오향장육에 들어가는 정향 팔각 산초 등의 향신료 대신 간장 물엿 설탕 마늘 식초 등을 넣어 족발식 소스를 자체 개발한 것이다. 돼지고기 살코기를 가늘게 썰어 소스를 뿌리고 다진 마늘을 흩뿌려 먹음직스럽다. 이 집이 자랑하는 감자탕은 소뼈를 우려낸 맑은 국인데 속풀이에 그만이다.
족발거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성족발(245-8730)은 20대 젊은층의 발길이 가장 잦은 곳이다. 2, 3층 대규모 연회석을 갖춰 회식장소로 인기가 높은데, 대학생 손님이 많다. 초저녁에는 족발 안주로 맥주 마시는 여자 손님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고 밤이 깊어지면 소주 마시는 애주가들이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다.
삐삐족발(245-7533)은 삶은 족발에 생강 식초 마늘 물엿 등 10가지 양념으로 맛을 낸 소스를 뿌리고 오이와 함께 씹어 먹는 냉채족발이 인기다. 또 족발에 함께 나오는 시래기국은 느끼한 맛을 없애 주는데 그 맛이 아주 깊고 각별해 두세 그릇 찾게 된다.
7. 망미동 아구찜골목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요즈음,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뜨끈뜨끈한 아구찜 한 접시가 생각난다. 맵싸하고 담백한 아구찜이 허전한 속을 채워 줄 것만 같다. 아구찜의 진미를 알고 싶다면 부산 수영구 망미동 아구찜 골목을 가보자. 이곳은 한때 20곳이 넘는 전문점이 생겨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7곳만이 남아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아귀로 나와 있지만 경상도 사투리인 아구가 친근하다. 아구는 몸통보다 머리가 커서 꼭 주걱 같이 생겼다. 온몸이 새까만데다 쫙 벌리고 있는 아가리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어 우스꽝스럽다. 옛날 어부들은 이 못생긴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들면 재수 없다고 하여 바다에 다시 ‘텀벙’ 던져 버릴 정도였다. 그래서 아구는 ‘물텀벙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이렇게 천대받았던 아구가 요즘은 웬만한 식당에서도 주문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층까지 두루 즐기는 음식이지만 실제 아구찜의 역사는 불과 4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아구찜의 유래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40년 전 마산 부둣가 옆에서 선술집을 하는 혹부리 할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겨울 어부가 낯선 고기 한 마리를 가져 왔다. 생긴 것도 이상해 그냥 홱 던져 버렸는데 한달쯤 지나 찬바람을 맞고 얼어 뒹굴고 있는 아구를 발견해 된장과 고추장을 발라 쪄서 단골들에게 술안주 삼아 권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이것이 아구찜의 유래라고 한다. 지금도 마산에서는 아구를 20~30일 말린 뒤 사용한다. 마산 아구찜이 눈물이 쏙 나올 정도로 매운 것과는 달리 부산의 아구찜은 순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남녀노소 누가 먹어도 부담이 없다. 말린 아구 대신 생아구를 재료로 해서 신선도가 뛰어나며 맛도 뛰어나다.
옥미아구찜(754-3789)은 서울에 분점을 낼 정도로 소문난 전문점이다. 84년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이 일대가 주택가였는데 옥미아구찜이 소문나면서 음식거리로 변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구찜(1만5천~3만원)은 맵싸하지만 담백하다. 다 먹고 나서야 매운 맛이 입 안에서 느껴질 정도로 자극적인 맛은 덜하다. 그래서 술안주보다는 식사를 위해 찾은 손님들이 더 많다. 큰 접시 가득 붉게 양념된 아구찜은 바다조개, 새우 등 16가지 해산물과 미나리 파 방아 마늘 등 20가지가 넘는 양념으로 맛을 냈다. 해독 성분이 뛰어난 아구는 미나리 콩나물과도 궁합이 잘맞다. 부드러운 살코기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만, 머리 지느러미 아가미 물렁뼈 부위가 보기 흉해도 오히려 맛이 좋다. 생고기에 된장과 청주를 넣어 삶은 아구수육(2만5천~3만5천원)을 먹을 때는 간 대장 부위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아구 간은 프랑스와 일본에서는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을 정도로 영양이 뛰어나다. 씹을 수록 쫄깃한 맛이 난다.
도로가의 청도할매아구찜(751-3703)도 맛과 전통이라면 남에게 지지 않은 곳이다. 20년 전 유명했던 반여동의 할매아구찜 분점인데 며느리가 반여동 할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았다. 호호 불며 먹어도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매운데 뒤끝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아구찜은 콩나물 미더덕 아구를 먼저 삶은 뒤 방아 미나리를 넣어 김을 낸 다음 고춧가루 소금 마늘 후추로 버무린다. 들깨나 땅콩을 뿌리지 않는 것도 특징. 아구찜 못지 않게 얼음을 동동 띄운 김칫국물이 인기 메뉴다.
8. 만덕동 오리타운
단풍에 취하는 계절이다. 가까운 산으로 가 보자. 오색의 옷을 갈아입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금정산 단풍은 느긋하게 11월 말에야 절정에 이르지만, 성질 급한 나무는 벌써 울긋불긋한 옷을 걸치고 있다. 하산 길 발걸음을 남문 쪽으로 향해, 북구 만덕동 오리타운을 찾으면 등산과 식도락을 함께 맛볼 수 있다. 남문을 통과한 뒤 석불사를 지나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 내려가면 오리타운이 눈앞에 펼쳐진다. 만덕동 오리타운에는 국내산 오리 요리를 전문으로 내놓는 오리 전문점이 40여 곳이나 된다. 만덕이라는 지명은 부근에 있었던 만덕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300년 전부터 50여 가구가 살고 있던 이 곳에 오리타운이 형성된 것은 마을 주민들이 등산객들에게 오리 한 마리, 닭 한 마리 삶아 준 것이 인연이 된 것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최근 특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어, 동래에서 제1만덕터널 쪽으로 차를 타고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마을 초입의 메아리산장(342-2121)은 공간이 넓어 단체 손님의 발길이 잦다. 단연 오리숯불구이(1㎏ 2만3천원)가 인기있는 메뉴인데 숯불에서 초벌한 뒤 가스불에서 데워 맛이 쫄깃쫄깃하고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불포화지방산인 오리 기름은 몇 시간이 지나도 응고되는 법이 없는데, 불판에서 흘러내린 오리 기름은 고기를 먹은 뒤 밥을 비벼 먹을 때 다시 사용된다.김치와 깨소금, 김, 참기름과 비벼 먹는 오리구이 비빔밤은 놓칠 수 없는 별미.
깔끔한 인테리어로 눈길을 끄는 우리장(332-1609)은 어린이 놀이시설과 족구장을 갖추고 있어 자녀와 함께 들러 볼 만하다. 야외 테이블 6개를 갖추고 있어 은은한 조명 아래서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장작불을 지펴 구워 먹는 제주 흙돼지 장작구이(1㎏ 2만5천원)는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 또한 좋다. 구이판은 드럼통. 드럼통을 세로로 두동강 내 그 위에 철판을 올려 고기를 굽는다. 주인이 직접 구한 장작을 안에 넣고 먼저 태운다. 불씨만 남을 때까지 장작을 태우고 남은 재 위에서 고기를 굽는데 골고루 구워진 고기 맛이 그만이다. 살코기는 고소하고 지방 부위는 씹을 수록 쫄깃쫄깃한 맛이 난다. 장작 태우는 시간이 걸려 20분 전 미리 예약을 해 놓으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사이판산 고추로 만든 매운 소스와 멸치젓갈, 겨자소스를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다. 주인에게 말만 잘하면 고구마도 장작불에서 구워 먹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오리 다리살을 돌돌 말아 화로에서 구워 먹는 생오리 갈비(1㎏ 3만원)도 이 집만의 별미. 오리 다리살을 옆으로 저며 칼집을 넣고 갈비 양념으로 맛을 내는데 양념에 감초 월계수 통후추 등 한약재가 들어가 건강식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오리타운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레스토랑 써니힐(334-1323)은 2천여 평에 가까운 넓은 공간과 황토로 만든 버섯 모양의 건물로 눈길을 먼저 잡아끈다. 빵과 스파게티를 절묘하게 결합한 브레디 해물스파게티(1만2천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이색적인 메뉴. 스파게티를 반쯤 익힌 뒤 빵 두껑을 씌워 다시 오븐에서 익힌 것인데 바싹바싹한 빵과 쫄깃한 면을 함께 씹는 맛이 구수하면서도 상큼하다.
9. 초량동 중국음식점거리
부산역 맞은편의 텍사스촌 거리에는 기름진 중국음식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90년대 들어 러시아 상인들이 몰려 러시아촌으로 불리고 있지만, 음식점만은 아직도 중국인들이 그 터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100년 넘게 중국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오고 있는 동구 초량동 화교거리에는 중국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중국집이 즐비하다. 텍사스촌은 밤과 낮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밤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활보하지만, 낮에 이 곳을 찾게 되면 중국어로 씌어진 간판과 화교들끼리 나누는 중국어 대화가 낯설지 않다. 현재 이 곳에는 2천여 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다. 화교거리는 1884년 청국이 현재 화교중고등학교 자리에 영사관을 설치해 객주들이 몰려들면서 만들어진 청관거리에서 유래했다. 비단 포목 양복지 꽃신 등 중국에서 수입해 온 상품들은 시집가는 경상도 처녀들의 혼수감으로 각광받았다고 한다. 화교거리의 중국집은 대부분 화교들이 직접 요리를 한다. 그래서인지 평소 동네중국집보다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요리들을 찾을 수 있다.
상해문(上海門) 입구의 홍성방(鴻盛坊·467-5398)은 메뉴에 올라 있는 음식 종류만 해도 127가지나 된다. 만두 전문점으로 명성을 얻은 이 곳은 손님들이 항상 꽉 찼다는데, 지금은 포장용을 찾는 손님들이 오히려 많다. 돼지고기와 부추로 속을 만들었는데 돼지고기의 강한 냄새를 부추의 향이 가려 줘 담백한 맛이 난다. 부추에는 돼지고기의 살균을 도와주는 성분이 있다. 13개짜리 물만두가 3천원, 10개짜리 군만두가 3천원. 삼선누룽지탕(2~3인분 3만5천원)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홍성방의 별미요리다. 찹쌀 누룽지에 뜨거운 해산물 소스를 부어 즉석에서 익혀 먹는 음식인데 새우 오징어 등 5가지의 해물과 청경채 버섯 호박 등 갖가지 야채가 입 안에서 함께 씹힌다. 아이들의 영양식으로 권할 만한데 청경채의 상큼함과 해물의 싱싱함, 거기에 누룽지의 구수한 맛까지 어울려 감칠맛이 난다. 류산스 깐풍닭튀김 탕수육 식사 감채류(후식)까지 나오는 코스요리(4인분 5만원)는 가족 외식으로 적당하다.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원향재(元香齋·467-4868)는 북경식 오향족발(2인분 1만5천원) 맛이 그만이다. 주당들의 술 안주감으로 인기가 높지만, 돼지고기 냄새를 말끔히 없애 주는 오향의 독특한 향, 기름기를 쫙 빼낸 쫄깃한 육질에 여성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 국물을 졸여 영양갱처럼 말랑말랑하게 굳힌 ‘슬’이라는 것도 함께 나오는데, 족발과 함께 먹으면 입맛을 돋워 준다. 화교가 직접 운영하는 중국집이지만 자장면(2천5백원)도 있다. 쫄깃한 면발과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가 상큼한 자장면 맛은 여느 중국집과 다르다.
삼생원(468-4881)에서는 이색적인 중국 빵을 맛볼 수 있다. 이 집은 겉보기는 허름해도, 3대째 가업을 잇는 전통을 갖고 있다. 공갈빵 계란빵 꽈배기 팥빵 등 8가지 종류의 빵과 왕만두(700원)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원탁에 둘러앉아 하나하나 맛보는 중국 전통요리를 제대로 체험하고 싶다면 코스요리를 먹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화교거리의 중국집 대부분은 12만원에서 2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5명에서 10명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6~10가지 내놓는다.
10. 범천동 조방낙지거리
왁자지껄한 시장에는 소담한 음식들이 즐비하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시장에 맛나는 음식이 빠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재래시장의 아성을 지키고 있는 부산 부산진구 범천 1동의 평화시장과 자유시장 주변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음식들이 행인들의 군침을 돌게 한다. 서부경남 시외버스 터미널이 이 근처에 있을 때부터 서울과 경남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했는데 외지의 상인들이 부산을 찾을 때마다 잊지 않고 먹었던 음식이 바로 그 유명한 ‘조방낙지’다. 조방낙지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된 데는 이 외지 상인들의 입소문 힘이 컸다. 조방낙지가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다른 지역 상인들에 의해 소문이 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던 것. 요즘에는 서울이나 대구 등지에서도 조방낙지라는 음식점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방’이라는 말은 자유시장 자리에 있었던 조선방직회사의 줄인 말로 조방앞이라는 지명도, 조방낙지라는 음식도 여기서 나왔다.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듯이 낙지는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다. 낙지는 지방함량이 낮은데다 맛도 담백하고 깔끔해서 여러가지 양념과 잘 어울린다. 특히 낙지에 풍부한 타우린 성분은 간장 해독기능을 도와, 동맥경화나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매콤해 땀을 훔치며 먹는 낙지볶음은 특히 요즘같이 찬바람 불 때 허전한 속을 채워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평화시장의 왼쪽으로 난 조방낙지 골목을 찾아가면 이런 희망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 줄지어 있는 노점상 주위로 음식점이 10여곳 있고, 이 가운데 낙지전문점은 단 4곳. 그러나 이 곳에서 원조 낚지볶음을 맛볼 수 있다.
원조낙지볶음 할매집(634-9618)은 점심 시간마다 3층까지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인근 보석 도매상인들은 물론 이집 낙지볶음(1인분 4천5백원)의 맛을 잊지 못해 멀리서 애써 짬을 내 찾아온 사람들이다. 냉동낙지가 아닌 그 날 잡은 싱싱한 낙지에 송송 썬 마늘과 파 양념을 듬뿍 올려 놓아 보기만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데, 가스불에서 단시간에 익은 낙지는 금세 육수와 채소에서 나온 즙을 빨아들여 쫄깃하고 얼큰한 맛을 낸다. 마늘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갔어도 전혀 맵지 않은 것이 신기한데 ‘땡초(아주 매운 고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무교동 낙지볶음과는 달리 맵지 않으면서도 진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낙지볶음 재료에 새우를 더 올린 새우낙지볶음(4천5백원)은 해물을 우려낸 육수에 새우 육수가 더 많이 들어가 낙지볶음보다 맛이 더 진하고 담백하다. 얼큰한 낙지볶음을 안주 삼아 찾아오는 주당들도 있는데, 밤늦게 앉아 있을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한병 넘어가면 술병을 빼앗는 주인 할머니의 매운 잔소리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음료수(한병 500원)로 목을 축이는 편이 낫다.
조금 깊숙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본가 낙지볶음(642-1041)을 찾을 수 있다. 낙지와 새우에 쫄깃한 소곱창을 올린 소곱창낙지볶음(5천원)은 해물과 고기에서 우러나온 육수가 얼큰해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낙지와 새우는 질기지 않아 담백한데, 소곱창은 오랫동안 씹어 음미하면서 먹는다. 낙지볶음에는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공기밥(500원)에 반찬은 부추무침과 배추김치, 무를 동동 띄운 동김치 단 3가지다. 부추와 볶음에 들어간 파는 낙지와 마찬가지로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외식하기도 좋지만 요즘은 포장해 사 가는 사람이 많다. 집에서 그대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정성 들여 포장해 준다.
11. 삼락동 재첩거리
오늘날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섬진강 재첩 이전에는, 그 유명한 낙동강 재첩이 있었다. 부산 사람이라면 뽀오얀 국물에서 우러나오는 재첩국 한 그릇의 그 진한 맛을 잊지 못한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재첩국은 아침 출근길이 바쁜 샐러리맨들에게 따끈한 밥 한 그릇 뚝딱 비워 주는 영양식이었고, 술독에 빠져 사는 술고래들에게는 불편한 속을 달래 주는 속풀이 해장국이었다. 부산의 재첩이 점점 그 자리를 잃어 가고 있지만 부산 사상구 삼락동에는 아직도 그 명성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낙동강 인근이 개발되면서 채취되는 재첩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근 30년 동안 삼락동 재첩거리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 적은 없었다. 삼락천 주위에서 음식촌을 형성하고 있는 삼락동 재첩거리에는 네 곳의 재첩요리 전문점이 남아 있다.
이 동네의 원조격인 할매재첩국(301-5321)은 그야말로추억의 장소다. 지금도 장작불로 불을 땐 가마솥에서 보슬보슬한 밥을 지어낸다. 재첩국(1인분 4천5백원)을 시키면 부추를 송송 썰어 띄운 국 한 사발과 가마솥에서 금방 지어낸 밥 한 공기, 뜨끈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등어 찌개, 그리고 빠알간 양념으로 버무린 김치가 군침을 돌게 한다. 시원한 재첩국물과 가마솥 밥에는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쭉쭉 찢어 먹는 김치라야 제맛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손님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밥값을 치르면 계산대의 할머니가 가마솥 누룽지를 건네 주는데 재첩 못지 않게 인기가 좋다. 가마솥에서 만들어진 누룽지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에겐 심심풀이 간식으로 안성맞춤인데, 바싹 눌은 누룽지가 꼬들꼬들한 것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난다. 28년째 식당을 지켜 온 유말임(77) 할머니의 인정이 따뜻한 누룽지 같다.
도로변의 하동재첩국(301-7200)도 점심시간마다 북적이는 손님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런 사정을 아는 손님들도 식사시간을 10분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재첩회로 비빈 사발밥 한 그릇과 시원한 재첩국 한 사발을 금세 뚝딱 비우고는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자리를 내준다. 그렇지만 한산한 아침에 이 곳을 찾으면 달걀까지 올려진 진수성찬을 받을 수 있다. 여러 번 찾아 얼굴을 익힌 손님들에게는 재첩의 영양이 뜸뿍 담긴 재첩진국이 제공되는데 이 재첩진국은 약으로도 쓰인다. 이 집에서 개발하는 재첩찜(1만원)도 맛이 각별한데 재첩과 어우러진 새우 오징어가 별미다.
골목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진한 국물맛을 자랑하는 아지매재첩국(301-1423)이 있다. 다른 집들보다 안쪽에 위치해 손님들을 놓치고 있다며 아쉬워 하는 주인 아주머니는 원액에 가까운 진한 국물 맛으로 단골 확보에 애를 쓰고 있다. 24년 동안 재첩국 장사를 했다는 주인 아주머니는 재첩을 캐서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던 시어머니의 대를 잇고 있다. 국물 맛은 끓일 때 붓는 물의 양에 반비례한다. 하루 전날 물에 담가 놓았던 재첩을 가마솥에서 물을 붓지 않은 채 삶아 알맹이가 나오면 뜨거운 물을 다시 부어 체에 거르는데, 이때 물을 너무 많이 섞으면 진한 맛이 안난다. 이 집의 재첩찜(1만원)은 재첩의 맛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다. 다른 해산물은 섞지 않고 재첩알과 조개만 넣어 국물이 우러나게 한 뒤 들깨 찹쌀가루 고춧가루를 뿌려 놓았는데, 담백하면서도 매콤한맛이 일품이다.
12. 기장 죽성 장어거리
스태미나 음식의 대명사인 장어. 기력을 잃었을 때 원기회복을 위한 최고의 보양식품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막상 장어의 정확한 이름마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장어거리를 찾아가기 전에 우리가 먹는 장어의 종류부터 짚어 보자.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장어는 크게 네 가지다. 민물장어 갯장어 붕장어 먹장어 등이 있는데, 민물장어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바다장어에 속한다. 민물장어는 흔히 우리가 ‘뱀장어’로 부르는 것이고, 포장마차 안주로 주당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곰장어’는 먹장어를 일컫는 말이다. 붕장어와 비슷하지만 붕장어보다 크기가 더 크고 다소 검은 빛깔을 띤 것이 갯장어다. 붕장어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많이 잡히며 횟감으로 인기가 높은데 ‘아나고’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먹장어가 기장의 대변이나 온천장 주변에 먹거리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면, 붕장어 타운으로는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를 꼽을 수 있다. 월전바다와 두호바다를 끼고 있는 죽성에는 30여 곳에 가까운 장어 요리집이 있다. 죽성 장어요리 타운은 바다에서 갓 잡아 온 붕장어의 싱싱한 맛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찬바람이 부는 요즘 문화횟집(721-2458)에서는 두호바다의 절경을 눈앞에 두고 장어를 맛볼 수 있다. 야외마당에 자리를 잡으면 해녀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바다를 가까이에서 주인이 직접 잡아 온 싱싱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28년째 이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집 주인은 횟집에서 내다보이는 두호바다 자신의 어장에서 매일 고기를 낚아 온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북적거렸던 곳이다. 붕장어는 구이와 회 두 가지로 즐길 수 있다. 회는 4인분에 5만원, 구이는 1㎏ 2만원으로 두세 명이 거뜬히 먹을 수 있다. 밥알처럼 작게 썰어 나오는 아나고 회는 가을이 제철이다. 농어 광어 돔 등이 푸짐한 잡어회(1㎏ 3만5천원)도 인기를 끈다. 숯불에서 굽는 장어구이는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고 부드러워 술안주로 만점인데, 예부터 복분자술로 잘 알려진 산딸기주와 어울린다. 밥(1인분 1천5백원)은 따로 주문해야 하는데 얼큰한 매운탕이 함께 나온다.
죽전 일대에서 바다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치있는 성벽을 끼고 있는 황성옛터(721-3978)는 황금빛 억새장관을 끼고 있다. 300여 평의 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자리를 잡은 다섯 개의 방갈로에서는 보기 좋게 자라난 억새의 무성함을 눈으로 즐길 수 있다. 장어구이와 함께 인기를 끄는 조개구이와 새우구이는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별미요리다. 조개구이(1㎏ 2만원)는 주먹크기 만한 대합조개 여섯 마리가 나오는데 철판에서 살짝 익혀 먹으면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조개 자체에서 나오는 짠 맛 때문에 양념장에 찍어 먹지 않고 그냥 먹어도 충분하다. 취향에 따라 버터를 얹어 익혀 먹기도 하는데 조금씩 발라 먹으면 고소한 맛이 더해져 더욱 맛있다. 굵은 소금 위에서 구워 먹는 새우구이(1㎏ 3만원)는 소금에 익혀 손으로 껍질을 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흔히 오도리라 불리는 보리새우 20마리를 팬에 익혀 먹는다. 식초를 넣지 않고 다시마와 멸치로 맛을 낸 이 집만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 안 가득 부드러운 맛과 향이 전해진다.
13. 온천동 칼국수 골목
찬바람이 불고 비오는 날에는 허전한 속을 채워 주는 따끈 따끈한 국물의 칼국수가 제격이다. 비가 오락가락 하고 휑한 바람이 부는 날, 칼국수 집의 매상도 쑥쑥 오른다. 더욱이 목욕으로 기운을 빼고 난 뒤 속이 출출할 때 먹는 칼국수 맛을 그 어디에 비할까. 부산의 유명 온천이 밀집해 있는 부산 동래구 온천1동에는 온천욕을 한 뒤 들를 만한 칼국수 골목이 있다. 허심청에서 한독직업훈련학교로 가는 사이길에는 칼국수 전문점이 6곳이나 된다. 원래 이 곳은 금정산 산행객들이 즐겨 찾던 갈비골목이었으나 최근에 칼국수 집들이 늘어나면서 칼국수 골목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일대에는 80년대 초부터 칼국수 전문점이 등장하기 시작해 전통 있는 칼국수 집들이 성업 중이다.
이 곳의 터줏대감격인 원조 소문난칼국수(554-9106)는 멸치를 우려낸 다시국물로,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정감있는 칼국수(2천5백원)를 내놓는다. 고춧가루와 계란을 살짝 풀어 놓아 보기에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데, 함께 나오는 반찬도 단 두 가지. 단무지와 하루 전날 담근 생김치가 소박한 맛을 돋워 준다. 이 집 칼국수는 다른 조미료를 안 쓰는 대신 멸치의 양을 두 배로 넣어 진한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멸치 가격이 껑충 뛰었는데도 칼국수 끓이는 방법은 25년째 변함이 없다. 제대로 된 국물 맛을 내려면 멸치를 고르는 것부터 정성을 쏟아야 한다. 건조가 잘 된 멸치를 골라야 하는데, 비린내가 나면 덜 마른 것이므로 좋지 않다고 한다. 멸치와 다시마는 끓는 물에 넣어 살짝 데친 뒤 바로 건져 내야 한다. 멸치의 쓴 맛이 우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멸치 우려내는 시간을 최소화한 것인데, 이것이 멸치 양을 두 배로 들어가게 하는 이유다. 면과 국물은 칼국수의 생명. 주인 이재창 씨는 다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더라도 면 반죽과 육수 만드는 것을 지금껏 직접 하고 있다. 깔끔한 국물 맛에 반한 사람들은 아예 냄비를 들고 와 집으로 가져 가기도 하는데, 입맛이 없는 환자들을 위해 음식을 사러 오는 손님들도 많다. 여름에는 냉콩칼국수(3천원)가 단연 인기다. 콩국수 국물에 들깨까지 넣어 진한 맛을 내, 한 번 맛본 사람들은 해가 바뀌어도 다시 찾곤 한다.
칼국수 맛이라면 가락타운 앞에서 성공해 온천장에 2호점을 낸 가락정칼국수(553-8585)도 빼놓을 수 없다. 식당 입구의 공개된 작업실에서 면을 반죽해 믿을 만한데다 사골뼈로 우려낸 육수를 좋아하는 남자 손님이 많다. 사골 육수로 만든 칼국수(3천원)라 배를 든든하게 해준다. 파와 고추, 호박을 총총 썰어 넣고 달걀 지단을 곱게 올려 놓아 먹음직스러운데다 맵싸한 김치와 깍두기, 고구마 맛탕이 깔끔해 미각을 돋운다. 육수는 24시간 고아 놓지만 칼국수 면은 미리 반죽해 놓은 것을 손님 오는 즉시 썰어서 삶는다. 요즘 같이 추울 때는 팥칼국수(3천5백원)가 좋다. 부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전라도식 칼국수로 팥죽에 새알 대신 칼국수 면을 넣어 끓이는데 달짝지근한 팥죽과 탄력있는 면발이 어울려 그 맛이 독특하다. 새벽 6시까지 영업이 이어지는 것은 보쌈에 곁들이는 소주 한 잔을 찾는 손님들 때문. 굴과 오징어가 곁들여진 무말랭이 무침이 시원하고 맛깔스러워 돼지고기와 함께 속에 들어가면 싸한 느낌을 준다. 2~3인분이 1만2천원인데 식사용인 보쌈정식(1인분 6천원)도 먹을 만하다.
14. 광안리 해장국 거리
연말이다. 줄 이은 술자리에 마음도 속도 불편한 직장인들이 많다. 술을 마신 다음날에는 속풀이 해장국이 그만인데, 해장국 한 그릇으로 마음까지 개운해진다면 더 이상바랄 게 없을 터. 부산 수영구 민락동 광안리 앞바다에는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해장국 거리가 있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민락타운 왼편으로 24시간 문을 여는 이름난 해장국집 다섯 곳이 모여 있다. 술꾼들의 마지막 코스로 새벽이나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문을 닫지 않는다. 이 곳은 대부분의 술집들이 문을 닫는 새벽 2~4시께에는 해장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해마다 1월 1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일출 손님’이 몰려든다. 광안리 앞바다의 새해 일출을 보러 왔다가 아침 식사를 하는 손님이 줄을 설 정도다. 또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이른 아침 조깅 후 한 그릇 식사를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콩나물국 시래기된장국 선지국 등 해장국의 종류도 다양한데다 정성을 쏟은 국 한 그릇 한 그릇이 먹음직스럽다. 속풀이용으로 개발된 터라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가 영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노오란 콩나물에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까지 하나 풀어 먹음직스러운 콩나물해장국은 단연 인기다.
새벽집(753-5821)은 30년간 전남식 시래기된장국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원래 막걸리와 회, 해장국을 함께 파는 음식점이었는데 시래기된장국의 맛이 뛰어나 해장국집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 장의 깊은 맛을 깨닫게 해주는 시래기된장국밥(3천5백원)은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다. 전남 담양 시골집에서 매년 메주를 쑤어 만드는 장맛에 그 맛의 비결이 숨어 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호박 깨 쌀가루 고추 등 2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가 그 맛이 각별하다. 밥을 국에 말지 않고 국과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4천원)은 반찬을 서너 가지 더 준다. 콩나물해장국밥(3천5백원)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멸치와 양파, 무를 망에 넣어 끓는 물에서 다시를 낸 뒤 고추장 양념과 마늘 등으로 맛을 냈다. 싱싱한 콩나물과 파가 듬뿍 들어간데다 식탁에 올려지기 직전 톡 터트려 뜨거운 국 기운에 익혀 먹는 생달걀은 보기에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원조콩나물해장국집(753-2328)은 시원한 콩나물해장국으로 주당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콩나물국에 김치를 넣어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맛을 내 술로 뒤죽박죽된 속을 개운하게 해준다. 멸치와 다시를 우려낸 국물에 쇠고기를 갈아 볶아 갖은 양념을 하고 새우까지 넣어 시원한 맛을 냈다.
광안리의 풍광을 즐기면서 속풀이를 하고 싶다면 소문난전주식콩나물해장국집(752-7557)에 들러 볼 만하다. 2층 식당에서는 커다란 유리 창문을 통해 일출일몰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콩나물국밥과 함께 선지국밥(3천5백원)도 인기 메뉴. 선지국은 밀가루와 왕소금으로 깨끗이 씻어 낸 소창자로국을 끓여 냄새가 안 나며 토란대와 콩나물, 파를 넣어 깊은 맛을 낸다. 만약 해장하러 이 곳을 들렀다면 문주 한 잔(1천5백원)을 마셔 보자. 막걸리에 계피 대추 감초 등 여섯 가지 한약재를 넣어 끓였는데 맛이 뛰어나고 뒷맛도 깔끔하다.
15. 부산대 앞 돼지국밥 골목
젊음의 기운이 충만한 부산대학교 앞 거리. 신세대들이 활보하는 거리이니만큼 인기 메뉴도 늘 새롭고, 등장하는 음식도 별난 것이 많다. 변화무쌍한 신세대의 입맛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음식의 종류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데, 10년 이상 버티는 음식점을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이런 곳에서 30년 가까이 변하지 않는 맛으로 변덕스러운 신세대의 입맛을 사로잡는 ‘구세대 메뉴’가 있으니 바로 경상도 특유의 음식인 돼지국밥이다. 부산대 정문에서 부곡동 방향으로 내려와 장전시장 쪽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한 모습의 돼지국밥 집 7곳을 발견할 수 있다. 골목 가득 풍기는 고향의 냄새가 길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하루 종일 고아 은근한 맛이 나는 국물에 쫄깃쫄깃한 고기와 순대를 듬성듬성 섞은 돼지국밥을 싱싱한 부추와 깍두기와 함께 먹을 때 느끼는 포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다 저렴한 가격(3천원)이 더해져, 돼지국밥이 오랫동안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것 아닐까. 아침 식사를 거른 젊은 학생들부터 전날 마신 술의 해장을 위해 찾아오는 중년 아저씨까지, 찾는 손님은 주로 남자들이지만 최근 들어선 성별을 불문한다. 여자 손님들끼리 돼지국밥 국물에 소주 한병 시켜 먹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투박한 모양과 맛 때문에 남자전용 음식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누구나 한 번 맛본 사람은 다시 찾곤 한다. 대학 시절 먹었던 국밥 맛이 그리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은 물론 타지에서 온 손님과 함께 찾는 나이 지긋한 대학 교수들까지 기성세대 단골층도 두꺼운 편이다. 돼지국밥은 원래 이북에서 먹던 음식인데 남하한 피란민들을 통해 부산경남의 향토음식으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 비봉식당 주인은 상경한 부산 사람들로부터 서울 와서 국밥집 차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25년 동안 이 곳을 떠난 적이 없다. 8평 남짓한 식당에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만 세 명이다. 이 곳 돼지국밥은 하루 종일 푹 고아도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고유의 양념장이 감칠맛을 낸다. 생강 마늘 소금과 함께 잡내를 없애 주는 된장은 개운하고 구수하다. 고기는 따로 삶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젊은 사람에게는 살코기만 내놓고, 기성 세대에게는 비계를 섞어 준다. 깍두기와 부추 반찬이 나오는데 소금과 고춧가루로 맛을 내 깔끔하다. 부추는 겨울에 물이 많이 빠져 겨울초를 섞어 내놓는다. 저녁 술손님들에게는 수육안주(4인분 1만원, 2~3인분 7천원)가 인기.
비봉식당과 나란히 있는 터줏집은 사골을 고아 우려낸 국물에 한약재까지 넣어 담백한 맛에 영양을 더했다. 돼지국밥에 부추와 새우, 쌈장, 국수를 한꺼번에 넣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 태양초로 만든 고추장의 매콤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진데다 새우까지 넣어 먹으니 그 맛이 진하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직거래해서 구입하는 고기는 기름을 걷어 낸 살코기만을 넣어 줘 그 맛이 뛰어나며 생강 양파 마늘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은 국밥 맛을 구수하면서도 깔끔하게 해준다.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3천5백원)은 고기가 풍성하고, 순대국밥(3천원)은 차진 순대와 진한 국물 맛이 어우려져 별미다.
16. 남포동 양곱창 골목
도란도란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로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가 피어 오른다. 연탄불에서 나는 가스냄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쨍그렁’ 유쾌한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답답한 가슴을 타고 스르르 내려오는 차가운 감촉…. 연탄불 위에서 쫀득쫀득 잘 익은 곱창 안주는 어느새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 입 안을 감싼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하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은 오랫동안 속에 머문다. 맛이 후하고 담백하기 그지없는 양곱창은 소주 안주에 제격이지만 소주 안주치고는 제법 고급스럽다. 1인분 1만원이라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위와 장을 보호하는 술 안주로,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미용식으로 그만인 양곱창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양곱창 골목이 남포동에 자리잡고 있다. 자갈치시장 농협 농산물백화점 뒤편 골목 사이로 드문 드문 들어서 있는 곱창집을 손꼽아 보니 무려 21곳. 한지붕 아래 서너 집이 함께 장사를 하는 센터가 대부분이어서 막상 하나하나 세어 보면 40곳이 넘는 양곱창 코너가 이곳에 모여 있다. 백화양곱창처럼 오래된 집도 있지만 대부분 최근 3~4년 사이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농협 농산물시장 뒤편의 백화양곱창은 남포동의 화려한 네온간판 속에서 세월을 비켜 간 듯 오래된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양철로 뚝딱 뚝딱 만든 연탄 아궁이겸 식탁, 나무로 만든 긴 간이의자, 건물 사이로 불쑥불쑥 서 있는 기둥들…. 이제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골동품 같은 소품들이 가슴속을 어루만지며 차가운 도시의 바람을 녹여 주고 있다. 처음 곱창전골을 끓여 주는 포장 천막이 있었으나 50년 전에 천막을 걷어 내고 현재의 목조 건물이 세워졌다. 50년 동안 줄곧 이 곳을 지켜 온 식당 주인의 주름살 만큼이나 깊어진 맛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해 온 한숙자(58) 씨는 “첫째는 한우 재료, 둘째는 연탄불이 양곱창 맛을 지켜 온 비결”이라고 말한다.
백화양곱창 옆의 대광양곱창에서 자리를 옮긴 대아양곱창도 연탄불을 고수한다. 2호점을 운영하는 정정희(50) 씨는 매일 양곱창을 구입해 6번 이상 헹궈 낸 뒤 아이스박스에 보관한다. 냉장고도 있지만 아이스박스에 보관해야 제 맛이 난다며 동치미와 함께 넣어 놓는다. 소의 위장을 일컫는 ‘양’. 소금구이와 양념구이가 단연 인기다. 연탄불 위에 달궈진 석쇠에서 굽는데, 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간한 소금구이는 참기름 마늘 소금으로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사르르 녹듯 감칠 맛이 난다. 설탕과 고춧가루 후춧가루 물엿 고추장 등 온갖 양념이 들어간 양념구이는 다시마와 설탕 식초 간장 등이 들어간 초간장에 푹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양곱창을 채썰어 밥에 비벼 주는 볶음밥(1인분 5만원 공기밥 1천원)도 별미라면 별미다.
신동아시장 맞은편의 부창양곱창은 깔끔하고 넓어 단체손님이 즐겨 찾는다. 팽이버섯과 마늘 등 재료를 아끼지 않는데다 야채와 과일을 고은 후 생강 마늘 간장 설탕을 넣어 만든 소스의 맛이 남다른 곳이다. 양 대창 소창을 골고루 넣어 주는데 양은 부드럽고 대창은 구수하며 소창은 쓴 듯 쫄깃쫄깃하다. 2인분 전골은 양이 풍부해 3명이 먹어도 모자람이 없다. 반찬으로 나오는 싱싱한 게장은 이미 소문이 나 따로 구입하는 손님도 많다.
17. 해운대 복요리 골목
도톰하게 살이 올라 포동포동한 살집, 진한 육수가 우러나 짭짜름하고 시원한 국물, 입 안에 들어가 혀 끝에서 사르르 녹는 그 부드러움이란. 산해진미 가운데 하나인 복어.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그 맛, 죽음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복어가 제 맛을 내는 겨울이다. 독을 품고 있는 복어는 독성이 강해지는 매년 4월 산란기가 오기 전인 겨울에 절정의 맛을 낸다. 해운대 유명 온천이 밀집해 있는 해운대구청 주변으로 복어요리 전문점이 다섯 곳이 모여 있다. 술독을 풀러 온천을 찾은 사람들이 사우나 다음 코스로 으레 복어집으로 향해, 유명 온천 주위로 복어집들이 몰려 있다. 복어라고 하면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인식되었으나 최근 복어 대중화의 노력에 힘입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시사철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 되었다. 같은 복어라도 조리 솜씨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같은 요리라도 복어 종류가 달라지면 그 풍미도 차이가 난다.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금수복국은 2대째 대물림하고 있는 손맛이 남다르다. 금수복국이 처음 문을 연 1970년대 무렵 설렁탕 한 그릇이 70원했고 복어국이 200원이었는데, 요즘 그 가격이 별 차이 없어 복어가 서민음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복어 관리에 쏟는 정성은 탕 한 그릇만 먹어 봐도 알 수 있다. 12월에서 2월 사이에 일년동안 사용할 복을 한꺼번에 구입해 냉동창고에서 보관하는데, 잡는 즉시 배에서 얼려 생고기처럼 신선한 것이 자랑이다. 일반적으로 눈 아가미 알 내장 등에 있는 독을 뺀 뒤 물에 담가 뼈 속의 독까지 빼는데 비해 금수복국은 독 성분을 음식조리 과정에서 활용하기 때문에 국물 맛이 더욱 진하게 우러난다. 탕(은복 7천원, 밀복·까치복 1만3천원) 국물은 그릇 두개를 포개 놓은 이중 뚝배기 덕분에 한 그릇 다 비울 때까지 식지 않고 따끈따끈하다. 애주가들에게는 급랭시킨 복어껍질을 팽이버섯과 미나리 오이 배 김 등과 무쳐 쫄깃쫄깃한 복어 껍질무침(한 접시 1만원)이 인기다. 동동주를 14시간 끓여 계피 설탕 등을 넣은 모주(한 잔 2천원)는 깔끔하고 개운해 해장술로 그만이다.
샤브샤브와 튀김 등 각종 복요리가 소문난 초원복국은 가족 외식이나 손님 접대 등 뭔가 특별한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찾아볼 만하다. 탕도 시원하지만 조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초원복국은 중앙동 초밥집에서 솜씨를 갈고 닦은 아버지의 손맛을 이어받아 아들들이 대연동과 영도 등에 체인을 이루고 있다. 복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물을 적게 넣고 익힌 복수육(은복 3인분 2만원)은 잃어 버린 입맛을 살려 주고, 부드러운 복어의 육질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복튀김(은복 3인분 2만원)은 간장 미림 다시 레몬 등으로 맛을 낸 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담백하고 향긋하다. 계란 노른자를 푼 녹말가루를 묻혀 두 번 튀겨 내 먹음직스럽고 바삭바삭하다. 복어를 살짝 익혀 먹는 복어샤브샤브(3~4인분 3만원)는 이 집의 자랑 메뉴. 버섯 정경채 등 각종 야채와 복어가 각각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배추와 파 두부를 먼저 넣고 익힌 다음 나머지 야채와 복어를 익히면 단맛과 어우러져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육수에 계란과 파, 김을 넣은 죽(1인분 2천원)은 고소한 맛이 난다.
18. 서면 뚝배기 골목
화려함은 없지만 은근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나는 옹기그릇. 찌개나 탕이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가 식탁 한가운데 올려지면 남 부러울 것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네 깊은 장맛을 지켜 주던 것이 뚝배기 그릇이었다. 일반 가정집 식탁에서 뚝배기 그릇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 옛날의 우리 맛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이 뚝배기 그릇의 편안함을 잊지 못한다. 투박하게 생겨 경상도 말로는 ‘툭사바리’라고 불리는 뚝배기. 식당에서는 음식이 식지 않도록 온기를 유지하는데 그만이고, 국그릇을 따로 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서면 롯데백화점 뒷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면 청국장 된장찌개 등을 뚝배기에 담아 내 주는 밥집들이 모여 있다. 최근 화려한 상가지역으로 변모한 이 곳에 뚝배기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 그 때만 하더라도 부산상고와 여관 등 숙박업소만 즐비했다. 한두 곳 생겨난 음식점에서 파는 뚝배기가 소문이 나면서 뚝배기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10여년 전 10여 곳이 넘는 뚝배기 전문집이 생겨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높은 집세와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았다. 이제는 롯데백화점 뒤편 소공원을 중심으로 5곳의 뚝배기 전문점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원조뚝배기는 구수한 청국장 맛이 일품이다. 집에서 직접 콩을 삶은 뒤 더운 여름에는 5일, 추운 겨울에는 7일 정도 발효시켜 청국장을 만드는데 고향의 맛을 느껴 보지 못한 젊은 사람이라도 그 깊은 맛에 반하고 만다. 순수 국산 콩을 사용해 맛이 순하고 부드러우며 청국장으로 만든 청국장뚝배기(5천원)도 구수하고 깔끔하다. 두부와 해물 파가 듬뿍 들어간데다 콩이 씹힐 듯 걸쭉한 맛이 느껴진다. 뚝배기 한 그릇만 나오면 섭섭해서일까 함께 내놓는 반찬 또한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싱싱한 채소에 고등어조림을 폭 싸서 쌈장을 넣고 한 입에 넣으면 향긋한 채소향과 쌈장의 구수함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담백하고 싱싱한 고등어와 어우러진 청국장맛은 미각을 돋우어 준다. 아침 저녁 담그는 생김치와 시원한 물김치 맛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인근 호텔에서 묵는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데 김치 맛에 반해 김치만 따로 사 가기도 한다. 싱싱한 게장도 남기면 손해다.
맞은편의 부전뚝배기는 3천5백원짜리 된장뚝배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저렴한 가격과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편한 것이 이 집 음식의 특징. 된장뚝배기는 짭짤한 듯 구수한 맛이 나고 까나리액젓으로 맛을 낸 반찬들이 깔끔하다. 된장과 순두부(3천5백원)는 멸치와 다시마 등을 우려낸 물로 끓이는데 된장의 텁텁한 맛이 덜하고 뒤끝이 개운하다.
골목에서 약간 벗어나 있긴 하지만 오랜 전통과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곳으로 할매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금 만남의 광장 맞은편에서부터 자리를 두 번 옮겼는데 단골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고 식당을 따라다닌다. 아들과 며느리가 대를 잇고 있는데도 된장과 간장만은 처음 뚝배기를 끓여 내던 할머니가 직접 담근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식당 입구에는 된장통이 여럿 나와 있고 통 위에는 시래기들이 말려지고 있다. 한정식(4천원)에는 시래기국이 나오고 쌈밥정식(4천5백원)은 된장뚝배기가 나온다. 쌈에 고등어조림을 싸 먹기도 하지만 작은 접시에 함께 나오는 멸치젓갈은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19. 금호마을 청둥오리촌
겨울이다. 찬 바람이 불어 몸이 으슬으슬 추워질 때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보양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불포화지방 함량이 높아 살찔 걱정이 없으면서도 에너지 공급원으로 손색이 없는 오리로 추위와 공해에 허약해진 몸을 보충해 주는 것은 어떨까. ‘마흔이 넘으면 오리고기는 찾아다니면서 먹으라’고 말하지 않던가. 오리는 필수 아미노산이 고루 들어 있어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한다. 지방 함량이 높은 에너지 공급원이지만 60%정도가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의 혈관계 질환 예방에 좋다. 노화방지는 물론 피부를 탱탱하게 해줘 여성들의 미용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뛰어난 자색을자랑했던 중국의 서태후도 오리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오리와 달리 청둥오리는 야생의 성질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식점에서 파는 청둥오리는 집오리와 야생 겨울철새를 짝짓기시켜 사육된다. 백오리와 달리 털이 검고 크기도 훨씬 작다. 5~6개월 동안 길러야 하고 운동량이 많아 껍질이 얇고 지방이 적은 점도 백오리와 다르다. 김해공항에서 약2㎞ 떨어져 있는 강서구 대저2동 금호마을에는 청둥오리 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음식점이 11곳이나 있다. 동서고가로와 서부산인터체인지가 가까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공항과도 멀지 않아 결혼피로연 손님들의 발길도 잦다. 애당초 청둥오리 농장이 먼저 자리를 잡았으나 공항 주위로 도로가 개통되면서 농장은 철거되고 음식점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강서구청 인근 농장에서 사육한 오리를 공급받고 있다. 몸에 좋은 청둥오리에 온갖 한방약재까지 넣는다면 금상첨화. 한방약탕(3만5천원)은 일상에 쫓겨 몸이 지친 사람에게는 한철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마을 입구 초원의 집은 보글보글 끓는 청둥오리 약탕을 큰 뚝배기에 담아 낸다. 압력솥에서 끓인 뒤 옮겨 담은 것인데 녹각 당귀 황기 감초 대추 밤 들깨 구기자 등 11가지 한방 재료가 들어 있다. 말이 탕이지 약탕에 가깝다. 갖은 약재가 듬뿍 들어 있고 압력솥에서 오래 삶아 국물이 거의 없이 걸쭉하다. 약간 쓴 듯 담백하고 부드러운 육질이 여느 고기와 다르다. 오리의 배를 갈라 그 속에서 익힌 찹쌀은 오리와 한방약재의 영양성분이 스며들어 더욱 먹음직하다. 갖은 재료가 듬뿍 들어 있어서인지 한 마리로도 3~4명이 너끈히 먹을 수 있다. 압력솥에서 푹 고아내기 때문에 조리시간이 45분이나 걸리므로 아예 예약을 해 놓는 편이 낫다.
청둥오리 전문점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금호마을은 20년 묵은 손맛을 자랑한다. 매운탕으로 나오는 오리도리탕(2만5천원)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주먹만한 감자와 듬뿍 들어간 팽이버섯이 먹음직스럽다. 송송 썬 미나리와 붉은고추 푸른 풋고추 파가 미각을 돋우고 무도 시원한 국물 맛을 더해 준다. 지방이 적어 구워도 고기의 양이 그대로인 점도 청둥오리가 여느 오리와 다른 점이다. 청기와가든의 오리구이(1마리 2만원)는 고추장 물엿 참기름 등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데 지방이 적고 쫄깃쫄깃하다. 고기를 먹고 나면 된장찌개(2천원)와 공기밥(1천원)을 시켜 식사를 할 수 있다.
20. 광안리 불고기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한 입 삼키면 사르르 녹듯 입 안을 감싼다. 이빨로 씹을 틈도 없이 부드러운 맛이 혓바닥으로 퍼져 간다. 고소하게 스며드는 후각의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불고기의 매력. 조금은 쓸쓸한 듯해 더욱 운치있는 겨울 바다, 광안리. 정겨운 사람과 더불어 바닷바람을 쐬고 싶다면 광안리를 찾아 보자. 따뜻한 숯불에 언 몸을 녹이며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은 식당들이 가까운 곳에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2동 바다를 마주한 원조언양불고기. 쇠고기 애호가를 자청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 봤을 만한 곳이다.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들 수 있고, 언제 찾아도 그 분위기 그 맛이 변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20년 넘게 발길을 끊지 않는 단골이 많다. 허름한 간판, 미끌미끌 넘어질 것만 같은 낡고 닳은 바닥이 오랜 세월을 증명한다. 무너질 듯 서 있는 초라한 건물을 한 번쯤 고쳐 보려고도 했지만 오래된 정겨움에 취한 단골들 성화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상호는 언양불고기지만 하루에 두세 차례씩 부산 김해 등지에서 싱싱한 고기를 구입해 온다. 메뉴는 단 두 가지. 소금구이(1인분 1만4천원)와 불고기(1만2천원)뿐이다. 고기는 등심 부위만 사오는데 40% 정도만 소금구이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불고기용으로 양념한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소금구이는 숯불에서 살짝 익혀야 제맛이 난다. 쇠고기에 띠포리, 다시마를 함께 넣어 진국을 우려낸 김치찌개 또한 반할 만하다.
김치찌개라면 진미언양불고기를 빠뜨릴 수 없다. 쇠고기를 우려내 시원하고 매콤한 국물과 뭉근할 정도로 오랜 시간 익힌 김치는 일본에까지 수출되어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김치찌개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담근 백김치로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오래 달일수록 맛이 좋아 식당에서는 하루 전날부터 물 7말이 들어가는 큰 냄비에서 끓여 놓는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김치찌개는 먹기 직전 식탁의 숯불에서도 달궈진다. ‘손님 많은 음식점에 가면 실패 확률이 적다’는 말은 음식 재료가 냉장고에 묵혀 두지 않아 신선하다는 말. 구포나 양산에서 사온 한우나 채소는 냉장고에 쌓일 겨를이 없다. 간장 설탕 마늘이 들어간 양념장은 불고기(1인분 1만2천원)가 구워지기 직전에 올려진다. 버섯까지 올려 지글지글 익히면 제법 먹음직스럽다. 간간하게양념이 배어나 사르르 녹듯 부드럽다. 고기를 먹고 난 뒤 식사 주문을 하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계란찜이 나온다(공기밥 2천원). 김치찌개는 아예 포장팩으로 만들어져 판매(2~3인분용 2천5백원, 3~4인분용 3천5백원)되고 있다.
불고기 식당이 밀집된 이 곳에서 저렴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진미언양불고기 맞은편 오시오숯불갈비는 저렴한 돼지고기 삼겹살(1인분 5천원), 돼지갈비(1인분 5천원)로 젊은 사람들의 인기를 끈다. 냉동시키지 않은 생삼겹살은 불고기가 부럽지 않다. 흰지방이 세 겹인 생고기 삼겹살은 쫄깃쫄깃한 고기 맛을 보증한다. 한 접시 나오는 감자도 그대로 익혀 먹기 좋다. 파 고추 간장 마늘을 끓여 양념한 갈비도 부드러워 식사나 술안주로 부족함이 없다. 시설이 깨끗한데다 24시간 문을 닫지 않아 새벽까지 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21. 온천장 곰장어
먹장어 또는 갯장어가 바른말이지만 꼬들꼬들 알맞게 익어 입에 들어가서는 쫄깃쫄깃 톡톡 씹히는 이 매력 넘치는 음식에는 왠지 ‘곰장어’라는 방언이 더 잘 어울린다. 사실 곰장어보다는 경상도식 억센 억양의 ‘꼼장어’라 불러야 직성이 풀릴 만큼 이 곰장어는 향토색이 강하다. 찬바람을 맞으며 뜨끈뜨끈한 오뎅국물에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서민의 주점 포장마차에서 곰장어는 으뜸안주로 통한다. 곰장어는 찬 겨울바람으로 마음까지 시린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술안주다. 온천이 많은 동래온천 주변에 70년대부터 곰장어 밀집촌이 형성되었다. 부산 동래구 온천1동 할매산곰장어 맞은편에 5개의 곰장어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나란히 서 있는 가건물 때문에 온천장 곰장어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80년대부터 스태미나 음식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온천장 곰장어의 유명세를 불러주었다. 현재 허심청과 녹천탕 천일탕 등 온천 밀집지역 인근으로 곰장어 전문점은 8곳이 있다. 대부분 새벽까지 문을 열어 놓고 술손님을 기다리는데 양념구이 소금구이 통구이 3가지로 조리된다. 곰장어를 먹고 나면 밥(1공기 1천원)을 볶아줘 식사시간이나 주말에는 외식손님도 적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곰장어는 라이신과 알기닌 등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어린이 성장발달을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3~4인분) 3만원, 중(2인분) 2만원, 소(1~2인분) 1만5천원으로 가격은 대동소이하나 곰장어를 굽는 연료나 양념, 주인의 손맛은각기달라 집마다 미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서 한 번 구워 낸 다음 바알간 양념과 설탕 양파를 듬뿍 올려 다시 한 번 더 구워 내는 양념구이는 곰장어의 담백하고 쫄깃한 맛, 양념의 매콤하고 달짝한 맛이 어우러진 별미다.
할매산곰장어는 70년대부터 시작해 시어머니 며느리 딸까지 3대를 이어가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탄불을 고집한다. 원조 멤버 가운데 한 곳으로 주인 최막필(53)씨는 근 20년을 매일 같이 풍로가 달린 연탄불 앞에서 곰장어를 구워 왔다고 한다. 온천을 하고 난 뒤 출출하던 차에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손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장어를 불에 익혀 참기름과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소금구이는 곰장어 본래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다 냄새까지 구수하다. 원조소문난곰장어는 곰장어를 연탄불에서 구운 뒤 양파와 함께 다시 살짝 굽는다. 최근에는 돌판을 식탁에 올려 구워 주기도 하는데 먹는 동안 식지 않고 따뜻하다. 연탄불에 구울지 돌판에 올려 구울 지는 손님이 선택사항. 곰장어 마니아들은 일단 연탄불에서 먼저 구운 뒤 돌판에서 다시 데워 먹는 방법을 선호한다. 원조소문난곰장어는 최근 보수공사로 매장이 한층 넓어져 단체손님들이 자주 찾고 있다.
문을 연지 2년밖에 안됐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와 주인의 별난 정성에 있어서는 록왕산곰장어도 뒤지지 않는다. 연탄불로 굽지 않고 100% 돌판에 올려 익혀 먹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곰장어 수육 또한 이 집의 자랑거리. 곰장어 껍질로 만들어 내는데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단백질이 농축되어 있는 영양 덩어리다. 소금물에 씻어 비린내를 없앤 뒤 양파즙 후추 등 6가지 재료로 만든 양념을 넣어 푹 고아내는데 묵처럼 부드럽다. 볶아 주는 밥맛도 좋다. 송송 썬 파와 김치에 김을 올려 정성껏 볶아 주는데 곰장어 양념과 어울러진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누구라도 금세 반하고 만다.
22. 범일동 초밥거리
윤기가 차르르 흘러 보슬보슬 숨을 쉬는 쌀밥과 부드럽고 담백한 육질이 살아 있는 듯 싱싱한 생선회 한 조각의 기막힌 조화. 밥과 생선회 사이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매콤한 고추냉이(와사비)가 눈물을 쏙 뺄듯 매콤하게 전해 오면서, 밥과 회는 춤을 추듯 빙그르 돌며 입 안을 사르르 녹인다. 생선회의 싱싱한 맛이 최고조에 달하는 겨울은 생선초밥의 환상적인 미각이 오감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모양이 흐트러져도 맛만 있다는 말도, 맛은 없어도 모양이 좋지 않느냐는 말도 초밥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먹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 두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제 이름값을 할 수 있다. 200알 남짓한 밥알을 손바닥에 올려 쥐락 펴락 묘기를 부리는 초밥 조리사들의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는 결코 하루 아침에 완성될 수 없는 숙련의 노고가 숨어 있다. 부산 동구 범일2동에 모여 있는 초밥집의 조리사들은 자존심이 남다른 ‘초밥의 달인들’. 범일2동 국제호텔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14곳의 초밥집에는 부산에서 내로라 하는 초밥의 달인들이 갈고 닦은 솜씨 경쟁을 펼치고 있다. 범일동에 초밥집이 모여들게 된 사연 속에는 국제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부산을 대표하는 호텔로 부산을 찾은 고위공무원 사업가들이 투숙했고, 자연히 이들의 구미에 맞는 초밥집들이 생겨나게 된 것. 최근에는 대중음식점으로 변모해 더욱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화성초밥 주인 이양수(48)씨는 30년 가까운 경력에 초밥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칼 솜씨만으로도 초밥의 맛을 알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씨는 13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이씨가 자랑하는 초밥은 생선과 밥 사이에 향긋한 깻잎을 넣어 만든 특미초밥. 살얼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알맞게 해동된 참치를 약간 두껍게 썰어 밥 사이에 고추냉이와 깻잎을 함께 올려 사각사각 거린다. 노란 알이 수북히 올려진 날치알초밥,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성게알초밥은 김과 어우러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초밥에는 최고급 생선을 사용한다. 횟감을 뜨고 남은 생선뼈로 끓여 내는 미역국 때문에 멀리서 초밥을 사러 오는 산모의 친지들이 한둘이 아니다. 8개가 오른 초밥 한 접시에 1만5천~2만원선.
부산초밥의 초밥은 맵싸한 고추냉이가 미각을 자극한다. 찹쌀을 섞어 쫄깃쫄깃한 밥과 장어 새우 오징어 청어알의 부드럽고 담백한 해산물을 어울려 싱싱한 초밥을 내놓는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장어, 찬 감촉에 쫄깃쫄깃한 육질의 광어가 입맛을 되찾아 준다. 회의 종류와 부위, 신선도와 냉동 상태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 초밥. 제대로 먹으려면 갖은 찬은 다 빼고 초밥을 맛있게 달라고 주문하라고 한다. 부산초밥 신정철 조리사는 “초밥의 달인들은 이런 미식가들을 알아서 모시는 법”이라고 말한다. 초밥에서도 최고로치는 참치의 뱃살(도로)을 맛보기로 먹을 수 있다.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으로 인기를 끄는 생태탕은 일식요리전문 대원이 자랑하는 음식. 띠포리와 무 다시마를 1시간 이상 끓여 깊은 맛을 내는 데다 생고추를 썰어 올려 더욱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멍게 회 해삼 새우를 딸기와 레몬과 곁들어 소스에 찍어 먹는 초회, 사과 당근 양파 마늘을 갈아 간장 식초 설탕으로 맛을 낸 간장소스를 올린 샐러드 등 곁들여 나오는 음식 하나 하나가 모두 먹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