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팔조령 터널을 지나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이르면, 연꽃이 가득한 2만600여평의 유호연지(柳湖蓮池)를 만난다. 8월 15일 쯤 유호연지에 가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 홍련이 연못 전체를 메워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연꽃이 필 때면 특히 많은 사람이 연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 연꽃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곤 한다. 요즘 한창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기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유호연지를 찾아 연꽃을 감상하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도로 옆 연못 한쪽에 세워진 정자인 군자정(君子亭)에 어떤 사연과 정신이 간직돼 있는지 알려는 사람은 드물다. 이 군자정에 담긴 정신과 의미를 알면, 멋진 정자가 있고 연꽃이 가득한 이 연못을 보며 느끼는 감흥은 배가 될 것이다.
#연꽃 같은 군자를 염원하며 지어
연꽃은 예로부터 군자에 비유된 꽃이다. 군자정은 연꽃 같은 청정한 군자를 추구한 창건주의 정신과 연꽃사랑 마음이 서려 있는 정자다. 군자정은 조선시대 중종 때 모헌(慕軒) 이육(생몰 시기 미상)이 지어 강학하던 곳으로, 연꽃 같은 군자를 염원하며 정자를 짓고 연밭을 조성한 500년의 역사가 간직돼 있다.
모헌은 함창, 보은, 평택 등지의 현감을 지낸 이평의 다섯 아들 중 넷째다. 맏형 쌍매당(雙梅堂) 이윤은 문과급제 후 청도군수와 부제학 등을 역임했고, 둘째형 망헌(忘軒) 이주 역시 문과급제 후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시문학에 뛰어났다. 셋째형 이전은 현감을 지냈다.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헌 자신은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을 역임했다. 아우인 이려는 문과급제 후 사간원 정언(正言), 홍문관 수찬(修撰) 등을 지냈다.
5형제 모두 점필재(畢齋) 김종직의 제자로 명성을 떨친 영재들이었으나, 모두 시절과 맞지 않아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 쌍매당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되고, 망헌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갑자사화 때 처형되었다. 사화로 인해 형제 모두 점필재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죽거나 유배되고 은둔하게 된다.
모헌은 사화로 가문의 수난이 시작되자 망헌이 유배되어 있던 진도를 오가면서 마음이 끌렸던,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山不高而秀麗) 땅은 넓지 않으나 비옥한(地不廣而肥沃) 청도 유호(유등의 옛이름)에 은둔하게 된다.
안동에서 내려와 이곳 청도에 정착한 모헌은 후학을 가르치고 선비들과 학문을 논하며 일생을 보내게 되었다. 모헌은 이전부터 있던 조그마한 못을 더 파고 넓혀 지금과 비슷한 규모로 만들어 '유호(柳湖)'라 이름 붙였다. 정자 옆에는 지금도 오래된 버드나무가 있다.
모헌은 직접 유호에 연을 심어 연밭을 조성한 뒤 1531년 연못 속에 정자를 지었다. 이름을 군자정이라 붙이고 제자들과 함께 강학에 힘썼다. 모헌이 연을 특별히 사랑하고 정자 이름을 군자정이라 한 데는 그 연원이 있다.
중국 북송시대염계(濂溪) 주돈이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돈이는 모란을 부귀한 자에 비유하고, 국화는 은사(隱士)에 비유했다. 그리고 연꽃은 군자에 비유했다. 모헌은 주돈이의 정신을 이어받아 연꽃처럼 청정한 군자를 추구했기에 정자 이름을 군자정이라 하고, 연밭도 지성으로 가꾸었던 것이다.
4칸 겹집으로 구조가 특이한 군자정은 1915년 중창한 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0년에 중건한 것을 1989년 새로 중수한 것이다. 유호연지의 물은 청도 들녘의 수원이 되고 있고, 연꽃이 만개한 풍경은 장관을 이루어 청도팔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강학모임 지금까지 이어져
군자정은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찾아들어 학문을 강론하고, 시인묵객들이 화조월석(花朝月夕)에 음풍농월(吟風弄月)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정자에 여러 인사들의 시문 현판이 걸려 있어 그런 정황을 엿볼 수 있다.
군자정에 드는 문에는 '일감문(一鑑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는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구 중 '반 이랑 네모진 못 하나 거울처럼 열렸는데(半畝方塘一鑑開)/ 하늘빛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네(天光雲影共徘徊)'에서 따온 것이다. 유호연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정자에서는 모헌의 강학 정신을 받들고 있는 모임인 '군자정 강학계(講學契)'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도유림은 매년 음력 8월18일 군자정에 모여 강회(講會)와 시회(詩會)를 열고 있다. 현재 회원수는 200여명이며, 회장은 서제민씨가 맡고 있다. 강회가 열리면 반드시 고전 한 구절을 소리 높여 독송을 하고, 한시도 지어 발표하는 등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유호연지는 조선시대의 '반보기 풍습'의 유래지로 기록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보기 풍습은 옛날 남녀가 유별하던 시대에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던 규방의 여인들이 추석 다음날 이 연지에 모여 서로의 회포를 풀면서 연꽃을 감상하고 담소를 나누던 풍습이다. 이 풍습은 광복 후까지 지속되다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청도에는 모헌 자손이 번성하여 현재 수천여호가 벌족을 이루며 5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 군자정 모임으로 망헌·모헌선생시문학연구회가 결성돼, 송남(松楠) 이승필씨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군자정 건너편 산기슭에는 망헌의 제단이 있고, 추원재(追遠齋), 유호재(柳湖齋), 원산재(院山齋)가 나란히 건립돼 있는데, 모두 모헌을 추모하는 재사이다.
한편 돈이 되는 것이면 조상의 혼을 모시는 사당 신주까지 훔쳐가는 세태 속에, 군자정에도 몇 해 전 도둑이 들어 정자 문짝을 모두 떼어 가버려 기둥만 남은 집이 돼버렸다. 이런 안타깝고 서글픈 현장을 한두 번 접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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