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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밀양 박씨/ 대구경북 씨족사

朴正培(박정배) 2010. 4. 3. 16:25

두임금 섬기느니…" 고려충신 송은 박익선생...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성계가 세차례나 벼슬(좌의정)을 내려 조정에 출사할 것을 요청했으나 끝내 출사하지 아니하였다.


<대구∙경북 씨족사> (10)청도의 밀양박씨(密陽朴氏)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소재지에서 청도방면으로 4차선 지방도를 따라 팔조령터널을 거쳐 꼬불꼬불한 팔조령 끝자락에서 1.5㎞ 달리다 보면 도로변 우측 학산1리 용강서원 표지석이 보인다. 이 표지석을 따라 서쪽방면 200m가량 들어가면 용강서원(龍岡書院)이 천년의 중턱이 지난 밀양박씨의 후손들이 모여 터를 잡은 집성촌임을 알려준다.
학산마을 뒷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용강서원(龍岡書院)에는 밀양박씨 문중의 현조(玄祖) 충숙공(忠肅公) 박익(朴翊)과 임진왜란 당시의 14 의사(義士)를 모신 호국보훈의 기상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 청도의 밀양박씨
밀양박씨 가운데 청도 입향조는 중시조 박언침의 16세손인 소고공(嘯皐公) 박건(朴乾)의 후손들이다.
우당 박융의 둘째아들 박건은 밀양에서 이서면 수야리로 입향, 후손들이 번창해 군내 지명에 따라 손자중 첫째 박하담이 소요당파로 이서면 학산리와 금천면 신지리, 둘째 박하청은 성와공파로 금천면 신지리 일원, 셋째 박하징은 병재공파로 이서면 수야리 일원에 500년이 넘도록 각각 자리 잡아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현재 청도군 이서면 학산리 용강서원은 문종 현조 충숙공 박익 선생과 임란 14 의사를 재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됐다.
용강서원은 목조와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서원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 영면하면 그 신위를 사당에 모시게 되는, 영남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입향조 소고공 박건 17대손 박영욱 청도문화원장에 따르면 용강서원에는 고려말 충신으로 8은(八隱) 중의 한 명이고, 두문동 72헌의 한 명인 송은(松隱) 박익(朴翊)과 아버지 우당(憂堂) 박융(朴融)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또 용강서원 충열사에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청도, 밀양, 경산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벌여 왜적에게 큰 타격을 준 일문 송은 선생의 7세손과 8세손 부자, 형제, 숙질, 종반 등 14명을 모시고 있다.
특히 의병활동과 함께 남다른 호국보훈 정신으로 선무원종 1등 공신 박경신, 2등 공신 박경전∙박경윤∙박지남∙박린∙박철남∙박근, 3등 공신 박선∙박찬∙박구∙박숙, 진무원종 1등 공신 박구 등에 봉해졌다.
이 가운데 박경신, 박경전 등 2명은 왜구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들 14 의사를 제향하는 용강재(龍岡齋)는 순조 16년(1794년)에 충열사로 개편됐으며, 고종 5년(1868년) 훼철됐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용강서원으로 건립됐다. 그후 1935년 관리사, 창고, 14 의사를 봉안한 숭의사가 충열사로, 용강서당이 용강서원으로 개명됐다. 강당은 1960년 건립됐다.
현재 시조공에서 68세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입향조 소고공 박건 선생 이후 22대로 이어지면서 후손들이 3천여호에 이르고, 금천면 신지리에 고가집 등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도의 밀양박씨 대종손 박우상(75)씨는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입향조 소고공 박건 선생 6대조에서 갈라진 용암공파 19대 종손 박상문(46)씨는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 종택인 운강고택은 박성욱(69)씨가 관리하고 있다.

# 밀양박씨의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이 밀성(밀양)대군으로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박언침을 시조로, 본관을 밀양으로 하고 있다.
밀영박씨는 박씨 가운데 제일 종가이며 밀양박씨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나뉘어 지고, 밀양 박씨 내에도 여러 개로 분파돼 있으며 이들은 또 여러 파로 나뉘어져 전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밀양박씨는 본관별 인구에서 김해(가락) 김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 밀양박씨의 계파와 가문을 빛낸 인물
밀양박씨의 분파는 문화시중공파, 좌복야공파, 밀직부사공파, 판도공파, 좌윤공파, 동정공파, 밀직부원군파, 정국공파 등 8개 계파로 나눠진다.
문화시중공파는 8세손 박언부, 말직부사공파는 8세손 박양언, 좌복야공파는 8세손 박을재, 동정공파는 13세손 박원광, 밀직부원군파는 15세손 박중미, 정국공파는 15세손 박위 등이다.
문화시중공파 박언부는 고려 문종조 태사관, 중서령, 문하시중, 도평, 의사, 봉밀집부원군으로 봉해졌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규정공파에서는 박강생, 박심문, 박숭손, 박건, 박중, 박충원, 박계현, 박승종, 박영, 박성원 등이 있다.
또 사문진사공파는 박의중, 박거겸, 박종남과 박신영 부자, 박연, 박열 등이, 밀성군파는 박신규, 박이서 등과 함께 실학의 대가 박제가 등이다.
입향조 박건은 송은 박익의 손자, 우당 박융의 차남으로 조선조 초기 용양위부사직을 지내다 청도로 낙향했으며 조부 송은 박익은 고려시대 중서령, 아들 우당 박융은 정은, 수찬, 이조좌랑, 근산∙함안군수 등을 지냈다.
밀양박씨는 조선조에서 문과급제 261명, 상신 1명, 대제학 2명, 청백리 2명 등을 배출했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밀양박씨의 인구는 270만4천600여명으로 조사되고 있다.
청도=남동해기자 namd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