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역사
- 초기 철기문화시의 연맹왕국 이서국
- 신라에 통합되기 이전 선사시대에 있어서 청도군 일대의 정치적 집단은 이서국이다
- 기원전 10세기경 중국대륙으로부터 금속문화가 전래된 한반도의 남부지역에는 급속한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다.
- 이들은 이전의 신석기인들과는 달리 구릉지대에서, 보다 안정된 농경생활과 목축. 수렵생활을 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부와 권력을 소유한 정치적 지배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 또 이들은 일정한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상호간의 대립.항쟁을 통해 여러개의 정치적집단을 형성하는데
- 기원 전후 철기문화의 보급에 따라 연맹왕국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소국의 하나가 이서국이다
- 청도군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선사유적은 처음 인간이 정착한 이후 신라에 통합되기 이전까지 이서국이 남긴 고고유적이다
- 주로 천변이나 구릉지에 분포되어 있는 이러한 유적은 수렵.어로 그리고 농경생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이서국과 신라
- 신라금성을 함락직전까지 몰고간 강대한 이서국
- 삼한시대 부족국가중의 한 소국이었던 우유국(優由國)이 이서국(伊西國)의 모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 이서국은 지금의 화양읍 백곡을 중심으로 우리 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부족국가로서 혈통체제를 수립하고 유리왕14년(37년:삼국유사 노례왕14년, 삼국사기 유례왕14년)때에 신라의 금성을 공격하여 위기를 겪게 한 강력한 부족국가 였으나, 유례왕 14년(297년) 화양읍에 소재하는 이서산성에서 일전을 최후로 신라에 복속(服屬)되어 이서군(伊西郡)이 되었다
- 청도는 신라가 낙동강지역을 정벌할 때 가장 중요한 전략상의 땅이 되었다. 종전의 구도성(仇刀城) 경내의 솔이산(率伊山), 가산(駕山), 오도산(烏刀山)을 합하고 지형적으로 일부는 대성군(大城郡)에 속하기도 했다
- 경덕왕 16년(757년)에 지명개정에 따라 솔이산을 소산현(蘇山縣:매전 동산), 가산을 형산현(荊山縣:화양 소라 이서 산성), 오도산은 오악현(烏岳縣:유천 오례산성)으로 개명되고 양주(良州:양산)에 속하기도 했으나, 군속은 밀양군에 일시적으로 속하여 있었다
- 신라는 이서국을 합병한 후 운문일대에 화랑들의 수련장을 만들어 삼국통일을 이루는 발판이 되었다. 우리 군은 행정적인 면보다 군사적인 요충지로 신라의 서진정책(西進政策)에 따라 사용했던 당시의 군대 주둔지가 많이 남아 있다
- 신라금성을 함락직전까지 몰고간 강대한 이서국
- 고려시대
- 지방호족세력의 통합을 위하여 청도군으로 승격
- 고려초기에는 신라제도를 그대로 이어 오다가 태조23년(940년)에 3현(소산현,형산현,오악현)을 합하여 처음으로 청도현(淸道縣)이라 하였다
- 성종2년(983년)에 12목제 실시로 경주목에 속하였고 그 뒤 10도제 실시에 따라 영동도에 속한 청도현이 되었다가 현종1년(1010년)에 도주(道州)로 주치(州治)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 1012년 지방행정제편으 개정에 따라 경주도호부속(慶州都護府速) 도주(道州)라 하였다가 1018년에 밀양군속(密陽郡屬) 청도현, 풍각현으로 분리 격하 되었다
- 1343년에는 다시 청도군이 되었고 또다시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366년에 다시 군으로 승격되어 밀양부속이 되었다.
- 지방호족세력의 통합을 위하여 청도군으로 승격
- 조선시대
- 잦은 행정구역의 변경
- 1366년(공민왕 15년)에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이래로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 조선조 초기인 1405년에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태조 7년에 좌우도로 분할됨에 따라 경상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게 되었고 20년 후에는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 되었다가 1458년에 대구진에 속하였다. 이후에도 지방행정개혁의 변동이 잦아 여러번 변경되었다
- 1832년에 상읍내면, 차읍내면, 내서면, 외서면, 내종도면, 상북면, 차북면, 하남면, 상남년, 외종도면, 적암면, 중동면, 동일위면, 동이위면 등 14면으로 편성되었으며 1896년 도제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 1906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대구에 속했던 각북, 풍각, 각초면이 편입되어 17면이 되었다
- 잦은 행정구역의 변경
- 일제 강점기 이후
- 잦은 행정구역의 변경
- 1911년 외서면 및 청도면이 밀양군으로 이관 되었으며 밀양군이었던 사촌동이 청도군에 편입되었다
- 1914년 행정구역의 통합정리시 각면을 통폐합하여 대성, 화양, 각남, 풍각, 각북, 이서, 운문, 금천, 매전, 종도면등 10개면이 되었으며 고미면의 일부인 지천, 봉하, 정상, 마일동이 운문면에 편입되어 212동으로 되었다
- 1919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종도면은 폐면이 되어 매전, 금천면에 분할 편입되어 9개면이 되었다.
- 1949년 청도, 1979년에 화양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어 2읍 7개면 212리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화양읍 동상리였으나,
- 1916년 청도읍 고수리로 옮겼다가 1961년에 화양읍 범곡2리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잦은 행정구역의 변경
(청도군청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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