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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가인(歌人)을 만나다 - 이동원

朴正培(박정배) 2010. 4. 1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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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산골로 내려가 은자(隱者)처럼 살고 있던 <향수>의 가수 이동원이 설을 앞두고 돌연 영국으로 떠났다.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진 영국 가수 ‘크리스 글래스필드(56)’의 초청에서 비롯된 출국이었다. 그는 영국 브리스톨시에 머물며 크리스 글래스필드와 음악활동을 함께 하다가 14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이동원은 그의 히트곡 <골든랜드 Golden land>를 국내에서 번안곡으로 발표할 준비를 하는 동시에 그에게 자신의 노래 <향수> 또는 <이별>을 발표토록 하는 등 음악 교류와 함께 양국에서의 공연(共演)도 추진 중이다. 음악무대의 중심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었고 또 음악팬들에게 잠시 잊혀졌던 이동원이 다시 분주해진 모습은 시간의 역주행 같아서 부러움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그는 삶과 음악의 여정에서 모두 산전수전을 겪었다. 나이가 중천을 지난지도 옛날이다. 그럼에도 소년처럼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는 그를 출국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7일 서울에서 만났다. 아울러 오래전 서울에서 사라진 뒤 청도에서 한가롭게 살고 있던 그를 만났던 작년 초여름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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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영국으로 초청한 가수에 대해 알고 싶군요.

크리스 글래스필드는 나와 나이나 음악적 성향이 비슷한 영국 가수죠.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한데 나처럼 기타를 치며 라이브 공연으로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국내 드라마(이경영, 이요원 등이 출연하였던 KBS 푸른안개)의 삽입곡으로도 소개된 그의 대표곡이 <골든 랜드>입니다. ‘황금의 땅’이란 노래인데 어린 시절의 꿈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죠.


어떻게 그를 알게 되었지요?

그는 동양과 불교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요. 얼마 전 타계한 부인이 일본여성이었어요.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크리스는 자신과 음악적 파트너가 될, 비슷한 성향의 한국 가수를 추천받고자 음반 기획사에 의뢰했고 그 행운이 내게 돌아온 것이지요. 얼마 전부터 그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며 영국 공연을 준비해왔어요. 돌아오면 CD를 준비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시골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온 것인가요?

아닙니다. 귀국하면 다시 청도로 가야지요. 그곳이 나의 현주소입니다. 음반준비 때만 서울을 오가면 됩니다. 새 일거리가 생겼다고 살던 곳이나 주거환경이 바뀐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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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골든랜드>의 가사를 직접 적어주는 이동원



이동원은 현주소의 뿌리를 청도에 둔지 오래된다. 그가 산골로 내려가 혼자서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산다는 곳을 찾아 나섰을 때 있었던 이야기와 풍경을 그대로 옮겨 보자.



청도? 언뜻 한국인들의 주요 관광지가 된 중국 청도부터 떠오르지만 아니었다. 경상북도에 있는 청도였다. 낙향해서 그곳에서 산다는 소문을 듣긴 했어도 조금 의아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이동원은 전부터 고향이야기를 별로 한 적도 없지만 기자가 알고 있는 한 그의 고향은 경북 청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청도에 산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을 출발, 이름이 다른 몇 개의 고속도로를 지나쳐 마지막 구마고속도로에서 2차선 산골 국도로 빠져나갔다.

“겨우 10여 호짜리 작은 마을입니다. 자칫하다간 집들이 안보여 입구를 지나쳐버리기 일쑤지요.”


이동원은 안심이 되지 않던지 마지막 통화에서 마을 앞까지 마중 나오겠노라고 했다. 국도 변에는 들꽃들이 쇼의 피날레처럼 흐드러져 있었다. 그가 노래했던 <정지용의 향수>가 자연스레 입에서 흘러나왔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시처럼, 이동원의 노래처럼. 산골의 풍경이 스쳐 지나는 길가에는 어쩌다 낡은 오토바이를 이끌고 가는 촌부의 모습이 보였다. 이동원의 집은 찾기가 쉬웠다. 문제는 그가 그 집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가 마을 입구에서 기자를 기다리겠다고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아, 그 고물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있던...!!’ 설마 하고 있는데, 그 촌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흙이 묻은 오렌지색 헬멧을 쓴 채로 기자를 보고 씩 웃었다. 맞다. 이동원이었다. 그 근사했던 긴 머리카락은 다 어디로 갔을까?


“4년 전 서울을 떠났어요. 2천만 원으로 이 집을 사고, 3천만 원 조금 더 들은 것 같아요. 수리하는데. 잔디 깔고, 외양간 고치고 라일락, 철쭉, 진달래 심고요...”


그는 그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방안에 기타와 책 몇 권이 보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50CC 오토바이를 담벼락에 세워둔 후 주인과 함께 손바닥만한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이동원의 좋아진 ‘피부’를 화제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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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경북 청도에서 만날 당시의 이동원


피부가 좋아졌어요.

피부만 좋아진 게 아니라 몸도 건강해졌어요. 여기 처음 올 때, 57kg이었는데 지금은 61kg이예요.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아주 단단해 보였다. 특히나 검은 모자 밑으로 흐르던 그 긴 머리에서 풍기던 우수 같은 어떤 것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더도 덜도 없는 그저 촌부 그 자체였다.


살아온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음... 여기로 오게 된 사연부터.

사연이랄 거 없어요. 잘나갈 때 충청도에 큼직한 집 한 채를 지었다가 아주 억울하게 날렸어요. 어정쩡하게 땅주인이라는 사람을 믿고 지은 건데 그게 법적으로 정리가 안 되어 건물을 빼앗겼어요. 그 후 마음도 비웠고 좋은 집이 탐나지도 않았어요. 살다보니 이런 저런 상처도 생기고, 서울을 떠나고 싶었지요. 오래전부터.


상처? 어떤?

지난 걸 들춰 뭐하나요.


그럼 그 밝힐 수 없는 상처 치유에 대한 휴양지 같은 곳인가요, 여기는?

그렇게 거창하진 않고요. 처음엔 여기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안했고. 벌서 4년이네. 그냥 일 때문에 차를 타고 이 마을 앞을 우연히 지나게 되었는데,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수천 번 ‘향수’를 부르면서 그때마다 정지용이 썼던 어떤 실존 지역의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했었어요. 노래란 것도 일종의 실존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마을 앞을 지나치는데 불현듯 느낌이 온 거예요. 큭. 아, 이거구나. 정지용이 보고 베껴 쓴 게 바로 이 광경이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보고 베껴 써요?

하하. 물론 그건 농담이구요. 정지용은 충북 옥천이 고향이고, 향수는 일본에 있을 때 쓴 시니까 절대 이 청도를 보고 쓴 건 아닐 테지만, 왠지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딱 그랬어요. 아 여기가 바로 그 무대구나.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찾던 그 이미지구나 하고 말이죠. 그래서 차에서 내려 무작정 마을로 걸어 들어왔어요. 그리고 이 집을 찾은 거예요. 그냥 아, 나 여기서 살아야겠다. 이 생각만 들었죠.


그 말을 하고는 잊었다는 듯 그는 직접 커피를 타겠노라고 방으로 들어갔다. 별채위의 새 둥우리로 어미새 한마리가 날아 들어가서 새끼들과 지저귐의 합창을 시작했다.


저 쪽에 새 둥우리가 생긴 별채도 원래 있었던 건가요?

아, 저기는 원래 외양간이었어요. (이동원은 커피를 내밀며 내 옆에 걸터앉았다.) 지금은 고쳐서 손님 사랑방으로 써요. 구들장도 깔았고요. 뭐 사실 오는 손님들도 별로 없지만.


왜요? 그래도 이동원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하하. 여기서 30분만 가면 산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운문산’이예요. 이 산이 죽여줘요. 영남의 알프스라는 말도 있지요. 거기 운문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가 비구니 수행 도량 이예요. 여자 스님들만 200여분 계시는 절이죠. 그 비구니 스님들이 요즘 제 ‘오빠부대’들이랍니다. 가끔씩 들러서 노래 한 곡조 공양하라는 분들도 계시고. 그것 말고는 없어요. 아, 있다. 지난해에 저기 새가 둥우리를 틀었거든요. 내가 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저 놈 이름도 몰라요. 아무튼 올해 그 놈이 다시 왔는데 식구를 늘려서 왔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하도 고마워서 요즘은 제가 저 놈들 보는 낙으로 살아요. 같이 대화도 하고, 먹을 것도 주고 하면서.


그럼 활동은 전혀 안하시는 건가요?

안하긴요. 인기가 없는 거지. 그래도 가수니까 와서 노래 불러달라고 연락 오면 가는 거죠. 며칠 전엔 경주 다녀왔어요. 거기서 ‘경주문화제’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패랭이 꽃>이라는 노래를 불렀죠. 김동리 선생 시예요.


패랭이 꽃? 어떤 노랜데요?


그 말에 이동원은 방에서 기타를 들고 나왔다. 기타를 잡고, 고개를 샐쭉 떨어뜨리자 이전까지의 촌부는 사라지고, 우수의 젖은 채 떨리는 <이별노래>를 부른 가수 이동원의 감성이 성큼 다가왔다. 노래를 시작했다.


파랑새 뒤 ?다가 들 끝까지 갔었네

흙냄새 나무빛깔 모두 낯선 황혼인데

패랭이꽃 무더기져 피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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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만든 노랜가요?
뭐, 그렇죠. 어쩐지 딱 내 신세 같은 시(詩)더라고요. 진짜 인생, 진짜 축복은 정말 이렇게 가까운데 무더기로 널브러져있는 건데, 난 왜 늘 다른데서 이걸 찾아서 헤맸는지 하는 그런 생각이요.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처럼요? 그 책 읽어 보셨죠?

바로 그거죠. 진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사실 요즘은 노래 부르는 것 보다 책을 많이 읽어요. 그게 이곳 생활의 재미죠.


그러고 보니 마지막 음반 낸 게 제법 되죠?

음, 전 원래 판을 내는 기회가 많은 가수는 아니고요. 정규앨범은 99년이 마지막 이예요. 그 다음에 2002 월드컵 때 즈음 편집앨범이 하나 나왔고. 그러고 보니까 진짜 앨범 낸지 10년 가까이 되네요.


<향수> 부르신 게 89년이죠?

네. 박인수교수랑 같이 여러 곡 함께 녹음했었죠. 향수도 있었고, 뭐 <여자 여자 여자>,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노래도 불렀고.


대단했었어요, 그렇죠?

뭐, 바로 반응이 온건 아니었고요. 1년 즈음 지나고부터 중년 팬들의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정지용시인이 88년도에 해금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내 생각엔 그 당시엔 올림픽도 있었고 뭐 그래서 사람들이 정신없었을 거고. 그러다가 한 두 해 지나서 여유들이 생기자 노래와 함께 정지용의 시문학이 대중문화의 한복판에서 들불처럼 타오른 것이지요. <향수>가 정지용이란 시인의 대표작이니까 시를 읽는 건 좀 머리 아파도 5분짜리 노래는 쉽게 들을 수 있는데다가 박인수 교수가 퀄리티를 채워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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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 

저 다음에 이문세도 있었고 뭐 그랬지만, 그 전엔 성악가랑 대중가수가 한 무대 서는 일이 흔치 않았으니까 사람들한테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거지요.


그렇지요. 그래도 그게 박인수 교수만의 힘은 아니고 이동원이라는 가수와 붙어서 생긴 시너지죠. 뭐랄까, 그 성악가와의 가장 어울리는 듀엣. 그런 의미에서 사실 <이별노래>가 참 기억에 남아요.

실제로 데뷔곡이죠. 아직까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동원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고정시켜버린 노래기도 하구요.


이제 우울한 일은 없나요?

많은 것이 여기 와서 바뀐 거예요. 더는 어두운 마음으로 살지 않아요.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게 어두운 거니까. 오라는데 생기면 다니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죠. 새 와 놀면서 진달래, 철쭉, 라일락 크는 거 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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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이 서울에 간혹 나타나는 것은 서울이 그리워서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청도에 사는 청도 산골 사람이다. 다만 우리 모두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늘 파랑새를 쫓듯이, 이동원은 청도에 살지만 그의 꿈은 오히려 서울에 살 때보다 더 원대하고 화려하다.



이동원은 영국에서 돌아오면 곧장 돌아갈 곳이 청도라고 했다. 그는 반평생 찾아 헤맨 <향수>의 실존 풍경을 그곳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제 그곳이 그의 정착지가 되고 고향이 되었다. 그렇다. 우린 모두 내 어릴 때 살던 고향과 함께 철없이 뛰놀던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시달리며 산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흙을 밟고 자란 사람들은 그 파랗던 고향의 하늘빛을 그리워하며 산다. 그럼에도 고향을 찾아가지 못하고 살지만 이동원은 고향의 꿈을 타향에서 찾아내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혼자 살면서 외롭다는 말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으면서.

 

 

'향수'의 가인(歌人)을 만나다 - 이동원

김두호가 만난사람 2008/02/14 10:25

 

 

이동원, 박인수 /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